내 삶에 도토리

당신의 도토리는 무엇인가요?

by 선량


아이들과 “이웃집 토토로” 영화를 보다가 토토로와 아이들이 도토리를 심는 장면을 보았다. 도토리가 잘 자라 나무가 되도록 두 손을 모으고 빙글빙글 돌며 기도를 하는 모습도 나왔다.


그 장면이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일본인들의 샤머니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도토리를 심자마자 싹이 나오고 나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애니메이션 답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마지막 신이었다. 사츠키가 동생 메이를 찾기 위해 토토로를 부르는 장면, 고양이 버스를 타고 병원에 있는 엄마를 보러 가는 모습은 주인공들과 함께 가슴을 졸이다가 한껏 신나게 웃어 넘기기기에 딱 좋았다.

아이들은 이 영화가 재밌었는지 여러 번 다시 보았다. 아기 토토로가 나와 도토리를 흘리며 걸어가는 장면에선 깔깔거리며 “Acorn(인도 넷플릭스엔 한국말이 나오지 않아 영어로만 봅니다.)” 하며 따라 하고, 영화가 끝나면 토토로를 그리며 즐거워했다.




갑자기, 토토로에서 도토리를 심던 장면이 떠오른 것은 기미시 이치로 작가의 “마흔에게”라는 책을 읽은 후였다. 이 책은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 산 책으로, 마흔이라는 거대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자 샀었다.

하지만 서른아홉에 읽을 땐,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내용도 그냥 평이하다고 생각했다.


어두울 줄만 알았던 마흔의 터널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어둠은 커녕 그 전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펙트럼까지 경험하고 있다. 마흔은 어두운 터널 입구가 아니라 중년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일 뿐이었다.


얼마 전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2년 동안 읽고 경험한 것들이 쌓여서일까? 이번엔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며 읽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공감이 되었다.

이 책에서 도토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냥 떡갈나무 열매이고 다람쥐 먹이일 뿐인 도토리가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다람쥐는 먹이가 되는 도토리를 발견하면 구멍을 파서 여기저기 묻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람쥐는 자신이 도토리를 묻은 장소와 묻은 사실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다람쥐가 있는 곳에 풀숲이 생기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잊어버린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자라서 숲을 만드는 겁니다.
[마흔에게, 기미시 이치로]




도토리.......

난 지금 어떤 도토리를 심고 있을까?


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심기고 있었다. 한 번씩 아이들의 말투에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가곤 한다. 특히 두 아이가 싸우거나 짜증을 낼 때는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내 말은 도토리가 되어있었다.


내가 쓴 글을 여기저기 퍼다 날랐다.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그리고 이곳 브런치에.

우연히 대학 동기 한 명이 브런치에서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해 왔다. 졸업 후에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 정말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친구는 내 글의 발자국을 따라 브런치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내 글을 하나하나 다 읽었다고 한다.(이 글도 읽겠지?)

친구는 내 글에 공감했고,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은 또 나에게 힘을 주었다.



토토로는 알았던 것일까?

자기들이 심은 도토리가 무럭무럭 자라나 큰 숲을 이룰 거라는 것을. 아주 사소한 행복이 무럭무럭 자라나 큰 행복이 되리라는 것을.

영화 속의 어린 아이가 꽃을 따다 밥을 만들어 아빠에게 가져다 주는 장면을 보면서 머리부터 발 끝까지 행복했다. 토토로의 배에 착 달라 붙어 하늘 위로 슝~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며 함께 신났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게 도토리였던 것일까?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여기저기 심기는 것 같다. 미안하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겐 내 본연의 부끄러운 모습을 심기게

되고, 날 모르는 사람들에겐 좋은 글만 심긴다.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이미 틀린 것 같다.

한 가지 안심이 되는 건,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제 아이들에게도 좋은 모습의 도토리를 심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분명, 지키긴 힘들겠지만.)


내 삶에 도토리는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심기고 있다. 내가 무엇을 심었는지 자각하기도 전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룬다.

희망이나 용기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심은 도토리가 불평이나 불만, 이기심이나 질투가 아니었음 좋겠다.


그냥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가 되어준다면 충분할 것 같다. 그게 아주 작은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쓴 이 글이 누군가에게 행복한 도토리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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