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이른 아침, 빗소리에 잠을 깼다.
전날 밤, 갑작스러운 두통으로 빨리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인지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두 아이와 남편은 이불을 돌돌 말고 자고 있었다. 꿉꿉함이 느껴져 리모컨을 찾아 에어컨을 약하게 틀었다.
토도독 토도독 떨어지는 빗소리가 위이잉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에 묻혀버렸다.
두통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고민하다 진통제를 찾아 두 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거친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내려왔다.
베란다 문을 여니, 뜨겁고 습한 개구쟁이 같은 바람이 가지런히 정돈된 집안 공기를 비집고 들어왔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나와 함께 놀자며 유혹한다.
가만히 왼 손을 내밀어 내리는 비를 잡아 보았다.
투둑 투둑 투두둑.
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장난을 치며 내 손목을 타고 미끄럼을 탄다.
노란색 장화를 신고, 노란색 우산을 들고,
첨벙첨벙 뛰어다니던 강아지 같은 내 아이들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데,
빗방울들은 함께 놀자며 자꾸만 내려와 손등을 적신다.
“자기는 날 왜 좋아했어?”
머리가 아파 누워있는 나를 조물조물 안마해주는 그를 향해 물었다.
삶이 해변가의 모래알처럼 지루해질 때, 나는 한 번씩 그에게 과거를 질문한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지만, 그 한결같은 대답은 파란 물감이 되어 모래알을 뒤덮는다.
넘실대는 바다 같은 파랑은,
멀리 밀려갔나 싶으면, 다시 후루룩 달려든다.
이제 그만,
문을 열고 들어가,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떨어지는 빗소리나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