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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21. 2020

배려하고 있나요? 배려받고 있는지도...

인문학은 모르지만, 행복하고 싶어서


며칠 전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날 왜 좋아했어?”




그 날은 속도 안 좋고 머리도 아파서 일찍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누워있는 절 걱정하며 손을 주물러 주었어요. 남편은 둥을 두들겨 주고, 다리를 주물러 주었지요. 집에서 존재감이 제로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영~ 없진 않나 봅니다.


누워 있는데, 이런저런 걱정거리들이 떠올랐어요. 당장 내일 아침엔 뭘 먹을지, 아이들 공부는 어떡할지,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걱정을 했더니, 마음도 우울해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실없는 질문을 해봤어요.

한 번씩 실없는 질문들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내 첫인상이 어땠어?”

“당신 첫사랑은 누구였어?”

“나랑 헤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나랑 결혼 안 했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아무 쓸데없는 질문들을 해봅니다. 그러면 또 남편은 대답을 해줘요.


이번 질문엔 이렇게 답하더군요.

“배려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

이 외에도 몇 개 더 있었지만, 말하기 부끄러우니 빼겠습니다.



암튼, 남편은 제가 남들에게 배려하는 모습에 반했대요.

제가 어려서부터 이름처럼 선량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거든요. 물론 그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형성된 성향이긴 하지만요. 사람들이 날 좋게 봐주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더 더 배려를 했죠.


결혼 후에도 남들에게 배려를 했더니, 이번엔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며 남편이 화를 냈습니다. 배려와 오지랖이 한 끝 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배려란 무엇일까요?

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혼 후에, 뭐든지 남편에게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죠. 결국 혼자 지쳐버렸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배려가 아니고 그냥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주는 게 배려라고요. 



얼마 전에 제 브런치에 댓글이 달렸었어요. 제가 발행한 글에 “인문학”이라는 말을 썼기 때문이었는지, 인문학 강의에 대한 홍보 글이었죠. 유명한 인문학 작가님이 오시더군요.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나와있기에, 좋은 취지의 홍보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었어요.



그런데 며칠 후 다른 글에 또 댓글이 달렸어요. 같은 인문학 관련 홍보 글이었는데, 강연 일정과 함께 올리셨더군요. 그런데, 또 다른 글에 똑같은  댓글이 똑같은 방법으로 달렸습니다.  

기분이 갑자기 확 나빠졌어요.

이번엔 실시간 방송도 되지 않는 강연이었고, 전주에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오라는 홍보 글이었거든요. 하필 제가 쓴 글이 코로나 때문에 인도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글을 읽긴 읽었나? 싶었어요. 그래서 항의성 글을 달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름 열심히 홍보하려고 한 일이었겠죠. 하지만, 배려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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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는 게 사람에 대한 학문이죠. 사람을 둘러싼 환경, 정치, 경제, 역사, 철학 등 모든 게 인문학이 됩니다.

이런 걸 공부하고 배우는 이유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철학이나 역사, 환경을 아무리 공부해도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건 학문으로써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3월 말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일을 하고, 회의를 하느라 바쁠 때도 있고, 조금은 한가할 때도 있어요.

바쁠 때는 남편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알아서 하죠. 하루 세 번,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해야 할 때는 솔직히 짜증이 납니다.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것도 제가 해야 하고요.  남편도 일을 하고 있으니 뭐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같이 한 공간에서 24시간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아마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예요. 제가 청소를 아주 잘하거나, 정리를 아주 잘하지 못하거든요.  요리도 대충대충 하기도 하고, 국에 밥만 주기도 해요. 


행히도 남편은  불평 없이 넘어가 줍니다. 그래서  싸움 없이 지내고 있어요.

일이  한가할 때는 알아서 설거지를 해줍니다. 빨래도 해주고요. 그러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며   일을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배려받고 있는 것 같네요. 


by goo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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