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뉴델리에 사는 가족 이야기
그림을 그리려고 안경을 썼다. 이상하게 안경이 더 헐거워진 듯, 아래로 흘러내렸다. 콧대가 워낙 없어서 안경이 흘러내리는 일이 새로운 건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더 심하게 흘러내렸다. 내 코가 더 낮아진 것은 아니겠지…..
안경을 벗고 다리를 몇 번 움직여 보았다.
헐… 한쪽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어젯밤에 아들아이가 내 안경을 깔고 앉았던 게 섬광처럼 지나갔다. 이런......
집 근처의 안경점을 검색해 봤지만, 모두 문을 열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안경점도 많이 문을 닫은 모양이다. 할 수 없이 테이프로 다리를 꽁꽁 감싸 붙였다. 줄줄 흘러내리는 안경을 한 손으로 붙들고 그림을 그렸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이다. 시력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는데, 아주 조금 칠판 글씨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안경을 맞추었다. 당시엔 안경을 쓰면 왠지 좀 있어 보이는 것 같았고,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모두 안경을 썼었다. 난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
안경의 역사는 25살에 끝이 났다. 며칠 휴가를 내어 라식을 했기 때문이었다. 라식을 하면 눈에 보호대를 붙여두고, 불빛도 어둡게 해 놓아야 하고 아무것도 하면 안 되었다. 당시 라식수술은 좀 비싼 편이었는데, 병원 일을 하면서 안경을 쓰고 뛰어다니는 일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거금을 들여 수술을 한 것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살 것 같았다. 눈 화장도 하고, 마스카라도 하면서 그동안 안경에 가려졌던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다시 안경을 쓰기 시작한 때는 30대 후반 즈음이었다. 타지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이 잠들기만 하면 핸드폰으로 한국 드라마를 봤었는데,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눈이 다시 나빠져 버렸다. 난시가 심해졌고, 노환도 시작되었다고 했다. 초점이 맞지 않아 자주 머리가 아팠고, 눈이 쉽게 피곤해지곤 했다.
전업주부인 나는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고르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 다양한 안경테와 안경알들, 눈을 더 잘 보호해 준다는 안경 알과 요즘 유행한다는 안경테.
결혼 전엔 거금들 들여 라식을 했던 사람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로는 나를 위해 돈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낮은 자존감은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 같다. 결국, 무료 안경테와 저렴한 안경알을 맞췄다.
아무도 나에게 돈을 쓰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를 “무료”로 취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무료로 맞춘 안경다리가 댕강 부러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테이프로 붙여서 쓰긴 했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안경을 제대로 쓰지 않고 글을 쓰고 책을 보고, 그림을 그렸더니, 다시 두통이 찾아왔다.
“나, 안경 맞춰야겠어.”
남편은 나의 간절한 말에 문을 연 안경점을 찾아냈다.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곳도 있고 고급스럽게 운영되는 곳도 있다.
조금 유명한 안경점에 갔더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한 사람씩만 입장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매장에는 다른 손님이 있었기에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다행히도 바로 근처에 조금 작은 매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시력검사를 다시 하고, 안경테를 골랐다. 괜찮은 게 많았다. 그런데 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본이 7만 원부터인 것이다. 좀 좋은 것은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20만 원짜리도 많았다.
만약 무료 안경테가 있었다면 나는 또 그걸 골랐을지도 모르겠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안경테를 골랐다. 이번엔 줄줄 흘러내리지 않는 걸로 선택했다.
새 안경을 쓰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금도 여전히 돈을 벌진 못하지만, 4년 전 나 보다는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을 “무료” 취급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