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시대, 뉴델리에 사는 가족

by 선량

뉴델리에 코로나 확진자가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던 지난 3월.

인도 정부에서는 전국 봉쇄령을 선포했다. 주요 기관과 마트를 제외한 학교와 회사는 모두 문을 닫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허가증이 필요했으며, 동네를 출입하는 모든 입구의 문이 잠겼다. 기차와 비행기,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봉쇄령은 3달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하지만 학교는 여름방학이 될 때 까지도 문을 열지 못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여름방학이 되면 한국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몸보신도 할 생각을 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가지 못했다. 만약 귀국을 할 경우 인도 비자가 중단되며, 다시 재발급받기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2년에 한 번 나오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은 이렇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여름방학 내내 방구석에서 지지고 볶으며 지냈지만, 새 학년이 시작하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델리 프랑스학교는 두 달간의 여름방학 동안 리모델링을 시행했다. 각 교실마다 UV램프와 환기 후드를 설치하고, 모든 교실의 공기 오염 제거 시스템을 설치했다. 학생들을 위한 개별 테이블과 의자를 교체하고, 화장실과 위생시설을 추가 설치했다. 아이들의 거리두기를 위해 복도의 폭을 넓히고, 1층에만 있던 도서관을 나누어 각 층에 배치해 교실의 중간 문만 열면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학교의 노력은 학교가 재오픈되었을 때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것이었고, 나는 그런 학교의 노력을 신뢰했다. 그리고 학교가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학교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확진자가 줄어들지는 않고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브라질을 제치고 코로나 확진자 세계 2위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2위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위일 것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코로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사망한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인도의 땅덩어리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인구도 어마어마하게 많으며, 그중에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 지금은 마스크조차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뜨거운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한 번씩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니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느냐고 다그칠 수도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근처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한산했던 마트가 요즘엔 북적거린다. 가끔은 이들 중에 확진자도 있을 것이고, 나 역시 확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뉴델리에서는 매일 3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인도 전역에서는 매일 8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믿고 있는 것은 마스크뿐이다.



개학을 한 지 2주가 지났다. 큰아이는 3학년 과정이, 둘째는 2학년 과정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선생님과 온라인으로 인사를 했고, 반 친구들과도 온라인으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과 친했던 아이들 중 인사도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고, 잠시 프랑스로 귀국했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3학년이 된 큰아이의 수업은 어려워졌다. 과제 역시 너무 어려워 매일매일 과제와의 전쟁이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엄마와, 말은 좀 하지만 문법이나 어휘가 부족한 아이. 우리는 온라인 클래스룸에 올라온 그날의 과제를 번역을 한 다음,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보고, 문법을 찾아보고, 그것도 안되면 다른 엄마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며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첫 2주 동안 아이도 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이에게 이것도 모르냐고 화를 냈고, 화를 내는 엄마 때문에 아이는 더 주눅이 들었고, 새로운 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한 아이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아이와 단둘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했다.


힘든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니, 아이 역시 너무 힘들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모두 포기하고 집에서 엄마랑 한글 공부나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한 번만 더 노력해보고 그래도 힘들면 그때 다시 결정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온라인으로 하기 때문에 더 힘든 것이고 만약 학교에 가게 된다면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엄마가 화를 내지 않을 테니, 너도 조금만 더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가장 힘든 사람은 아이라는 것을 안다. 공부를 해야 하는 당사자는 아이이고, 자신이 잘 못한다는 것 때문에 더욱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코로나 환경이라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그럼에도 한 번만 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잘하지 못해도, 끝까지 과제를 수행했다는 것에 칭찬하고, 힘들었지만 함께 문제를 풀었다는 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지금은 모두 힘드니까.

이 힘든 시기엔 누가 잘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잘 견디느냐가 중요하니까.

잘 견디기 위해서는 가족의 사랑과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니까.


이렇게 확진자가 고공행진 중이지만, 6개월 만에 타지마할을 오픈한다고 한다.

학교나 좀 오픈해주지...

과학 과제 수행 중_나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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