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Sep 28. 2020

5. 그냥 쉽게 사는 법

1장. 평범한 일상 속 행복찾기

어느 날, 큰아이가 저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거 뭐야? 냉장고에 뭐가 붙어있어.”

“그게 뭔데?”

“그…냥..쉽..게..살..자..????”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 냉장고에 붙어 있어.”

연달아 둘째가 말했습니다. 

“엄마~ 베란다에도 붙어 있어.”

“엥?? 뭐라고 써 있는데?”

“ 그..냥..쉽..게..살자.”

“때 버릴까?”

“내버려 둬. 아빠가 써서 붙여 두었나 보다.”

“이런 말을 왜 써?”

“그냥 쉽게 살고 싶나 보지.”

  첫째 아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쉽게 살기 싫은데.”

  “왜?”

  “난 항상 어렵고 힘들어. 공부도 힘들고. 하지만 쉽게 살고 싶진 않아.” 

  “엄마 생각엔, 넌 이미 충분히 쉽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제도 하루 종일 놀았고, 2시간 넘게 게임도 했고, 뒹굴거렸고,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고…. 더 이상 쉽게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더 쉽게 살려면 밥 먹고, 싸고, 자고, 숨만 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아빠는?”

  “아빠는 회사일 하느라 힘들잖아.”

  “아닌데. 내 생각에는 아빠도 이미 쉽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맨날 우리한테 심부름 시키지. 맨날 안마 시키지, 맨날 혼자 유튜브 보지. 아빠 하고 싶을 때 게임하지, 우린 집 밖에 못 나가게 하면서 아빤 맨날 산책하러 나가지.”

  “듣고 보니 그러네. 그래도 회사 일 하는 건 힘들겠지.”

  “다른 아빠들은 회사 안 가?”

  “가는 사람도 있고, 엄마가 가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다들 힘들겠지?”

  “난 어른이 되기 싫어. 힘들게 회사 다녀야 하잖아.”

  “헐…….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힘들다는 생각 안 드는 일.”

  “그게 뭔지 모르겠어.”

  “엄마도 그걸 몰랐고, 아빠도 몰랐어. 그래서 이제 알아가는 중이야. 좀 늦었지만 말이야.”

  “그래서 아빤 쉽게 살고 싶은 거야?”

  “엄마 생각엔, 우린 이미 쉽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빚도 없고(집도 없긴 하지만), 가족들 아프지 않고(가끔 아프긴 하지만), 싸우지도 않고(가끔 다투긴 하지만), 아빠가 돈도 벌고(그러느라 스트레스 받지만). 이보다 더 쉽게 살 수 있을까?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엄청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일 거야. 사실 절대 아닌데. 엄마가 글 쓴다고 청소를 잘 안 한다나는 걸 모르겠지? 너희들이 공부도 안 하고 온종일 뒹굴거린다는 것도 모를 거야. 하지만 쉽게 사는 것과 대충 사는 건 많이 달라. 삶의 의미도 모른 체 바쁘게만 살아가는 걸 거부하는 건 쉽게 사는 거고, 집안일도 대충, 일도 대충 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건 대충 사는 일이고. 생명에 지장이 없고, 남에게 피해주는 일이 아니라면 좀 대충해도 될 것 같아. 

  그런데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지던걸?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땐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실패할까 걱정하지 말고,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일단 하는 거. 그게 쉽게 사는 거 아닐까? 

  아빠도 아마 대충 사는게 아니라 아빠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그런 걸 거야. 그런데 또 아빠는 우리집 가장이니까 엄마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아빠에게 쉽게 사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말 궁금하다. 아빠가 그걸 찾으면 알아서 때겠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베란다와 화장실 앞, 냉장고 앞엔 여전히 “그냥 쉽게 살자.”가 붙어 있다.


작가의 이전글 4. 설거지학 개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