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Sep 28. 2020

6. 당신의 이름은 몇개인가요?

2장. 진짜 나를 찾기

 어렸을 적 제이름은 선량이었습니다. 언니들과 친척들은 모두 “세”자를 돌림자로 썼어요. 세진, 세연, 세정, 세경, 세영. 정말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들이지요? 그래서 제 이름이 괜히 싫었어요. 발음하기도 힘들고, 쓰는 것도 힘들고요. 한자도 좀 이상했어요. 착할 선善, 어질 량良의 “선량”이 아니라, 먼저 선先, 어질 량良이었어요. 

“먼저 어진 사람이 되어라.”라는 뜻이었겠지만, “먼저 어지는 사람”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친구들은 저를 부를 때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곤 했어요. 설량, 선냥, 설랑, 선영, 선향이까지. 어린시절 남자 아이들은 특별한 이유도, 관련도 없이 그냥 별명을 지어 부르곤 하죠. 저에게도 그랬답니다. 이름이 선량이라는 이유 하나로 설탕이나 성냥개비로 불렀죠. 

제 이름을 이렇게 어렵기 지은 이유는, 제가 넷째 딸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위에 딸들 이름을 너무 예쁘고 여성스럽게 지었더니 계속 딸을 낳았다고 생각하셨나봐요.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특별히 제 이름을 지으셨죠. 그래서 제 동생은 아들입니다. 

제 이름이 선량이가 아니고 선양이었다는 사실을 안 건, 고3때였어요. 호적에 이름을 올릴 때 량이 양으로 올라갔다는 군요. 양이나 량이나 그게 그거지만,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을 써야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선양”이가 되었답니다.  대학 이후부터 저는 선양이라고 불렸어요. 사회 생활을 할 때도 “선양쌤”이라고 불렸죠. 사람들은 선양이라는 제 이름에 특별한 뜻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선한 양”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며 기독교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 이름은 기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름이었지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어딘가에 가는데,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선양아”이러니까, 기사 아저씨는 제 성이 “선”씨라고 생각했었나봐요. 

“제 옛날 여자 친구가 “선”씨였어요. 흔한 성이 아니라서 “선”씨 말만 나오면 옛날 여자친구가 생각나네요.”

선씨가 아니라서 괜히 제가 죄송할 지경이었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기를 했다더군요. “선향, 선영, 선형”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각각 부르니, 제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들리는데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죠. 

제가 영어이름을 쓰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후부터였어요. 한국사람도 부르기 힘든 이름인데, 외국인에겐 오죽했을까요? 그래서 제 이름과 비슷한 영어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쏘냐”라고 만들었어요. 전 이 이름이 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이름도 그렇게 쉬운 이름이 아니었나봐요. 지금 제 외국인 친구들 중에 저를 sonya가 아니라 sonia라고 아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그런데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저를 선양이라고 부르든, 선향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었거든요. 어차피 저는 저니까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이름인 것 같아요. 나중에 본인이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하는 사람도 많긴 하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느 시간부터 불리운 이름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리죠. 

저는 이름처럼 선량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름과 다르게 행동하면 욕먹을 것 같았거든요. 한때는 그게 조금 억울했지만, 그 이름 덕분에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다시 제 이름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을 낳으라고 지어진 이름인 “선량”으로요. 발음하기도 힘들고 한자 뜻도 다르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이름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이름으로 불리고 싶거든요. 그래서 여러 SNS에 이름을 모두 선량이라고 바꾸었어요. 진짜 내 이름을 찾고, 진짜 내 인생을 살아보려고요. 


포털 사이트에 “선량”을 검색하면 먼저 “선량”에 대한 한자 뜻이 나옵니다. 

1) 뛰어난 인물을 가려 뽑음

2) 어질고 착하다.

3) 물질이나 조직에 흡수된 전리 방사선의 총량

4)반의어: 불량

5) 유의어: 곱고 착하다.

그 다음으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책이 주르륵 나옵니다. 그리고 맨 아래 제 브런치가 나와요. 

언젠가는 제 브런치와 책이 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제 이름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저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길. 그러려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선량의 뜻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5. 그냥 쉽게 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