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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28. 2020

9. 공헌감이 뭔지 알아버렸습니다.

2장. 진짜 나를 찾기

    작가가 책을 출간하면 출간 강연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종종 생깁니다. 지난 해 12월, 첫 책을 출간했지만, 그런 자리를 기대할 순 없었어요. 한국이 아닌 인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간된 책도 한참 후에야 받아 볼 수 있었죠. 첫번째 책을 출간 후, 두번째 책을 과연 쓸 수 있을까? 망설여졌어요. 한국이 아니라는 공간적 제약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서 의식주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죠. 한인 마트도 있고, 한인 식당도 있고, 쇼핑몰도 있어서 필요한 건 언제든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집도 있고요. 이런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더 상위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지죠. 먹고 살기위해 하는 일 말고, 나를 현재 상태에 묶어두지 않고 성장시키고 싶어지는 일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을 어떻게 해서든 뛰어 넘어야 했어요. 

한국 사람이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에 사는 사람처럼 성장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대형 서점에 가서 관심 가는 책 뒤쪽을 보면 출판사 이메일이 있어요. 그 이메일을 모아서 투고 메일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그게 어려워요. 전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검색한 후, 출판사 이름을 죽 적었어요. 그 다음, 포털 사이트에 출판사 이름을 하나씩 적어 검색을 했어요. 어떤 곳은 홈페이지가 있었고 어떤 곳은 블로그만 있었습니다. 블로그가 없는 출판사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갔고, 그것도 없는 출판사는 인스타 그램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일일이 들어가 투고 메일주소를 모으고 기록했어요. 이 일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어요. 출판사의 메일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책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었죠. 하지만 투고를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블로그에는 자신의 책을 사면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주겠다는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왠지 투고 이메일 주소를 수집하는 일이 좀 경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어요. 그건 꼭 대학시절, 돌아다니는 족보를 보지 않고, 내가 손수 필기한 노트로 공부하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말로 하면 요령을 피우지 않는 것이었고, 나쁜 말로 하면 무식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저에겐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요령을 피워서 남들보다 빠르게 갈 수는 있겠지만, 그 일이 내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이 경험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쓰임이 될 거라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사소한 경험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비록, 아는 게 없어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이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책을 POD로 출간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어요. 원고를 모두 써 놓은 상태에서 마음을 저울질했습니다. 투고를 한 번도 하지 않고 POD로 만든다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딱 세 곳에 투고 메일을 보냈어요. 그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제가 기대했던 조건이 아니었어요. 그 때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그리고 이번 경험이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부크크를 통해 POD출간을 했던 바로 그 날, sns에 소식을 올렸어요. 그걸 본 마미킹 대표님이 글쓰기 강의를 해달라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마미킹이라는 엄마들의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만나기 힘들어진 엄마들이 매주 화요일에 온라인 줌에서 만나 함께 책을 읽고 나누고 있었어요.  책을 따로 구입하거나 미리 읽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죠.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나누는 무겁진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모임이었어요.

  강의 부탁을 받고 잠시 망설여지긴 했지만, 좋은 기회일 것 같았습니다. 강의 부탁을 받은 그 날 바로 강의안을 만들었어요.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하는 편이에요.  좋은 말로하면 집중력이 뛰어난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성격이 매우 급한거죠.

  그렇게 준비한 강의를 드디어 하게 되었어요. 총 12명이 참석하였고, 한국 시간으로 10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어떻게 글을 썼는지, 어떻게 투고를 하고, 첫 책을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는지, POD 책은 어떻게 만들고 전자책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간단하게 알려 주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일이었죠. 아주아주 평범한 나도 했으니,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일단 자기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그리고 점점 독자를 위한 글을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요령 피우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강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의 피드백이 이어졌어요. 다행히도 다들 좋은 말만 해주셨습니다. 전 그제야 공헌감이 무엇인지 알아버렸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그 느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어요. 그건 말로 헤아릴 수 없는 행복감이었어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떤 상태든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살아 있는 것만으로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마흔에게, 기시미 이치로-

 이 책에서 말하길, 공헌감은 가장 큰 행복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도 용기가 생겼어요.”

  “선량님 덕분에 궁금했던 걸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도전이 되었어요.”

  내 입에서 나갔던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어요. 내 입에서 나갔던 작은 속삭임이 강한 바람이 되어 되돌아왔습니다. ‘이게 바로 “공헌감”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왜들 그렇게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 하는지 알 것같았어요. 인플루언서가 별건가요? 블로그 이웃도 얼마 없고, 인스타 팔로워도 얼마 안 되지만, 내 말과 글에 공감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플루언서 아닐까요? 


  공헌감에 취해 강의를 마쳤습니다. 안방에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동안 아이들은 거실에 있었어요.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돌아온 순간, 작가이자 강연자였던 제 모습은 온대간대없이 사라졌습니다. 1분 전 까지만 해도 공헌감에 푹 빠져있었는데, 문 밖에는 현실의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건 바로 엄마가 바쁜 틈을 타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는 아이들과 어지럽혀진 테이블, 치워지지 않은 주방이었습니다.

  “야!! 휴대폰 안 내려 놔!!”  헌감에 잔뜩 취한 작가는 사라지고 평범한 엄마만 남았습니다.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모두 제 모습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의 나로 변신해 볼까요?




문을 닫으면 나는 작가, 글쓰기 멘토, 선량님이 된다. 

닫힌 문을 열면 단지 엄마일뿐. 

어느쪽의 존재감이 더 큰지는 알 수 없지만. 

방안의 나도, 방밖의 나도 그저 나이기에

안과밖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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