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에 사는 현실 가족 이야기
"이번 주 음악 수업은 선생님의 건강 사정으로 취소되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열이 나고 몸이 좀 안 좋아서 코로나 검사받고 왔어요. 당분간 수업 참여가 힘들 것 같아요."
"회사 직원이 또 확진되었대."
"직원의 가족들이 걸렸대."
날마다 들려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소식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더 이상 확진자 수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너무 많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연일 떠들어대는 언론 소식에 걱정스레 연락을 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응, 우린 아직 괜찮아. 집에만 있어...."
우린 괜찮을 거라는 지극히 희망적인 말은 하지 못했다. 뉴델리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을 테니까.
아직은 괜찮다....
어제는 남편이 약국에서 약을 잔뜩 사 왔다.
인도는 의사 처방전이 없어도 약 이름만 알면 구입할 수 있다. 지인 중 한 명이 이주 전 즈음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되었는데, 그때 복용했던 약이라고 했다. 이번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는 젊은 사람들 특히 아동 감염률이 높다. 그래서 아이들이 먹을 시럽도 함께 사 오도록 했다.
남편이 사 온 한 꾸러미의 약봉지를 알코올로 하나하나 닦으며 제발 이 약들을 먹을 일이 없기를 바랐다.
뉴델리 하루 확진자 수가 200명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마스크를 조금씩 벗기 시작했다. 급기야 수영장과 스포츠 센터도 오픈을 했고, 쇼핑몰과 마트, 시장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러다 큰 일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이미 인도는 희망적인 분위기로 넘쳐났다.
인도가 워낙 더러운 나라이기에 오히려 면역력이 높다는 둥, 이미 집단 면역이 되었다는 둥, 카레의 주 성분인 강황(tumeric) 덕분에 코로나에 강하다는 둥 검증되지 않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우리 가족 역시 그 분위기에 휩쓸려 마트를 다니고, 외식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학교를 다니고, 여름에 한국에 다녀올 생각에 건강검진 예약까지 했다.
한 달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잠잠했던 확진자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학부모, 학교 관계자, 회사 직원들이 감염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으며, 며칠 전에는 갑작스럽게 일주일 럭다운 발표가 났다.
럭다운 발표가 있던 날, 다행히도 오전 중에 소식을 들었다. 마스크를 두장 쓰고 부리나케 마트로 달려가 일주일치 식료품을 사 왔다. 그나마 먹을거리를 사다 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한국에 빨리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니? 회사 그만두고 들어와 버려. 언제까지 인도에 있을 생각이냐?"
걱정스러운 부모님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괜찮다고 집에만 있다고, 먹을 것 미리 다 사다 놓았다고 안심시켰지만 우리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내 집이라는 건 안다.
이 와중에 여전히 샤브작 샤브작 일을 하고 있다.
글방 모임을 하고 글방 식구들의 글을 읽으며 울고 웃는다.
월간 찌질이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무료 발행을 하고, 후기를 읽으며 즐거워한다.
온라인 공동체 마미킹에서 만들고 있는 브랜딩 출판 마지막 작업을 한다.
새로운 강의 준비를 하고,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볼 구상을 한다.
짧은 메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브런치 공모전에 참여를 하고, 다른 공모전은 없는지 찾아본다.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나는 또 누군가로부터 동기부여를 받는다.
나의 시선과 마음을 현실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가 아닌, 온라인 속의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그 안에서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아 본다.
아니, 사실은 살기 위해 일을 만들고
숨쉬기 위해 일을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며 오늘도 아프지 않은 것에,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매번 희망적인 글을 남길 수는 없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어떻게 희망만 기다리고 있겠나?
희망은 모르겠고,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아무런 뜻도 의미도 두지 않았던 "안녕"이라는 인사가 요즘은 가장 소중한 말이 되었다.
"저희는 안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