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행복했던 경험이 필요해!

뉴델리 현실 가족 스토리

by 선량

"딩동" 현관 벨이 울렸다. 두 아이는 잔뜩 흥분하며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마스크를 꺼내 쓰고 문을 열었다. 경비 아저씨의 손에는 택배가 들려있었다.

"소은이 거네. 자, 받아"

"우와~ 진짜 빨리 왔네. 오빠 내 거야. 얼른 풀어보자."

두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택배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거칠고 다급한 손놀림에 상자는 이내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기다리던 LOL 장난감이 나왔다.


"오늘은 내 생에 최고의 날이야~~~!!"

딸아이는 이제 막 도착한 장난감을 들고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둘렀고, 남편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었다. 생일도, 어린이 날도 그렇다고 착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그냥 평범한 날들 중 한 날일 뿐이었다.





"엄마, 우리도 예스 데이 하자. 나 진~짜 하고 싶어. 응? 제발~~"

넷플릭스로 예스 데이라는 영화를 본 후였다. 어떤 한 날을 예스 데이로 정해놓고 부모들은 절대 "NO"를 하면 안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영화였다.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아빠가 엄청난 양의 아이스크림 먹기에 도전해 우승을 하고, 자동 세차를 하는 중에 창문을 열어 차 안으로 물이 들어오게 한다. 영화에 나온 세 아이의 부모는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Yes"로 받아준다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그걸 하고 싶다는 아이들.


아....... 인도에서 이렇게 사는 것도 피곤한데, 그런 것 까지 해야 되겠니? 평소에도 Yes라고 잘 말해주는데, 꼭 그런 날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니?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급기야 남편은, 그래. 하지 뭐. 언제로 할까?라고 화답하고 있다. 나만 나쁜 엄마지 뭐야...



그래서 결국 '예스 데이'를 만들었다.

그 날 아이들은 핸드폰 게임을 실컷 하고, 유튜브를 실컷 보고 급기야 아마존에 들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장바구니에 담기까지 했다. 아들아이는 베이블레이드를, 딸은 LOL 장난감을 선택했는데 그게 도착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이다. 자주 사주진 않지만, 아이들이 간절하게 원하면 사준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렇겠지만,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잘하지 않는다. 공부에 대해서도 일절 요구하지 않으며 꼭 필요할 때만 내 잔소리에 말을 보탤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무서워한다. 어쩌다 한번 화를 내면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 좋은 걸 얻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다못해 심부름으로 모은 용돈을 절반이라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숙제는 했냐, 시험공부는 했냐, 정리는 왜 안 하냐, 핸드폰 그만해라, 게임시간 끝났다, 방 정리 좀 해라, 샤워는 했냐~~ 끝없이 잔소리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코로나 때문에 네 식구가 하루 종일 붙어있는 날이면, 잔소리의 빈도는 더 많아진다. 휴....



며칠 전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흥분하며 달려와 말했다.

"엄마, 아빠가 게임 현질 해줬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해줬나 봐. 며칠 전에 실수로 필요 없는 아이템을 사는 바람에 다 써버렸었거든. 아빠 진짜, 최고다!!"


아이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앉아있었다. 또 게임에 돈을 쓰다니, 다른 건 몰라도 게임에 돈을 쓰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당장 남편에게 다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게임에 왜 돈을 써? 중독이야? 아휴, 정말. 그건 돈 아니냐고."

그런 날 보며 남편이 한마디를 했다.


"난 아이들이 행복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행복했던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 난 그런 경험이 없어서 지금 좋은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감정을 잘 못 느껴. 그게 너무 속상해."

"그래도... 게임 현질은 좀..."

"그냥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행복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고 싶어. 꼭 노력이나 보상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남편의 말에 나는 더 이상 딴지를 걸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둘 다 감정적으로 결핍된 어린 날을 보냈고, 스스로 노력해서 삶을 개척하며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생일 선물은커녕,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어린이날 선물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기념일 같은 날에 선물을 받지 않아도 크게 서운하지 않다.

좋은 일이 생기면, 혹시 내가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도 하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온다는데.... 하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내 노력보다 큰 보상이 따라오면 왠지 모를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음식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던가?


행복하거나 즐거운 감정도 경험해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다.


좋은 일이 생겨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선물을 받아도 '고마워'한마디만 툭 던지고 마는 그와 나 같은 어른은

즐거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그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오늘이 내 생에 최고의 날이라고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다.



때론 어느 정도의 결핍을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는 행복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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