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나를 생략하다

글과 나. 1

by 선량

어렸을 적부터 매우 내성적인 아이였다. 명절 때 사촌들이 모여 묵찌빠를 한다든지, 공공칠 빵 게임을 할 때조차도 참여하지 못했다. 누군가와 내기를 하거나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극도로 긴장하곤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그런 아이였다.


다섯 형제 사이에서도 존재감은 미미했다.

큰 언니는 큰딸이기 때문에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둘째 연이 언니는 큰 언니의 말에 부연 설명을 하거나 극한 동의를 하면서 입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셋째 정이 언니는 정보력과 자금력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막내 귀남이는 유일한 아들이기 때문에 존재만으로도 빛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있다가 언니들이 하라는 대로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큰언니 : 엄마 칠순 잔치는 가족 여행 어때? 다 같이 해외여행 간 적 없으니까, 같이 가보자.

연이 언니 : 좋아 언니. 선량이가 해외에 있으니까 중간 지점에서 보는 거 어때? 지금부터 여행경비 모아야겠다. 언니도 알다시피 우리 식구가 돈이 좀 없잖아. 그래도 가족들 모두 가는데 우리만 빠질 순 없지. 언제 즈음 갈까? 너무 신난다.

정이 언니 : 친한 언니가 여행사 하는데, 그 언니한테 물어볼게. 우리 가족은 항공사 가족이니까 비행기 값 얼마 안 들어. 여행 가서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우리 가족 티 하나 맞출까? 돈은 내가 낼 게~

귀남이 : 어, 알겠어. 휴가 신청해야 하니까 날짜랑 경비만 말해줘. 난 누나들 말 따를게.

큰언니 : 좋아 그럼, 경비 계산해서 알려줄 테니까 모두 내 통장으로 돈 보내고, 엄마 아빠한테는 내가 말할게. 그리고 선량이는 알아서 오고.

선량이 : 응, 알겠어!

큰언니 : 그럼 여행사랑 비행기는 정이가 알아보고, 연이는 예산 짜고, 귀남이는 휴가 날짜 알아보고, 선량이는 알아서 오고, 다들 여행 경비 가족 통장으로 보내고, 제부들은 아내들 말 잘 듣고 따르도록!

제부들 : 넵!



교회에서도 존재감은 미미하다.

뉴델리 한인교회를 다닌 지 2년이 지났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오고, 교회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으며, 모임이 있어도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억지로 만들어지는 관계는 또 싫어해서 먼저 만나자거나, 소통하며 지내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런데 인도를 떠나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말을 들었다.


"집사님, 집사님이 조용하시지만, 교회에선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데요. 빈자리가 참 클 것 같아요."

한 번도 내 존재감이 클 거라는 생각을 못 해봤기 때문인지 그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에게 "존재감"은 낯선 것이었다.


현실의 선량이와는 다르게 상대방에게 호흡을 들키지 않는 거리와 공간에서는 꽤 적극적이다. 물리적인 힘도, 시간의 속성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곳은 바로 sns 세상이다.

내가 쓴 글을 올리고, 자작 시를 공개하며, 생각을 과감하게 남긴다. 쓰는 행위에 있어서는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다. 먼저 찾아가고, 팔로잉을 하고, 먼저 말을 건다. "우리 소통해요."라는 어색한 이 말을 주저함 없이 사용한다. 나를 알리고자 하는 욕망은 끝이 없다.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다른 인 플루언서를 따라 하고,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어 소비하고, 남들이 하는 것들을 나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려고 하면 할수록 존재감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한 무리로 뭉뚱그려지는 느낌이랄까....




한 편의 글을 쓴 후 다시 읽어볼 때 가장 거슬리는 단어가 "나"이다. 왜 그렇게 나를 여기저기 뿌려 놓았는지. 왜 그렇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나, 나는, 나를, 나에게, 나의, 나로, 내, 내게, 내가'


문장에서는 모두 다르게 "나"를 소비하지만, 결국 "나를" 쓰는 이유는 "나"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존재감은 약해지고, 재미없는 글이 되고 만다. 오히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킬 때, 내 존재감이 더 부각되는 것처럼.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 여기저기 써 놓은 "나"를 거둬들인다.

"나"를 쓰지 않아도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들을 헤아리기 위해 나를 읽는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나를 생략하고 나면,

비로소 내가 말하고자 했던 문장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몇 년 전 엄마 칠순 기념으로 태국 가족여행을 갔다.

큰언니 가족 다섯 명, 연이 언니 가족 네 명, 정이 언니 가족 네 명, 선량이 가족 네 명, 귀남이 가족 세 명,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총 스물두 명의 가족이 전세 버스를 타고 방콕과 파타야를 누볐다.

큰 언니는 여전히 진두지휘를 했고, 연이 언니는 말이 많았으며, 정이 언니는 돈을 많이 썼고, 귀남이와 그의 딸은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수다스럽던 언니들이 외국인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언니들을 대신해 의사소통을 했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긴 해외 생활로 다져진 생존 영어는 어디에서나 통했다.



존재감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때가 되면 저절로 드러나는 법.


문장 속의 "나"도, 현실 세계에서의 나도, sns에서의 나도

조용하지만 필요할 땐 존재감을 드러내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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