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나. 2
“야, 얼굴이 그게 뭐야? 여기 누워 봐!”
2년 만에 만난 언니가 바늘을 손에 들고 말했다. 나는 순순히 언니의 무릎에 누웠다. 언니는 비장한 손짓으로 눈가에 난 비립종을 향해 과감하게 바늘을 드리웠다.
“아야!”
“아이고 시원하다.”
언니는 비립종 다섯 개를 모두 짜낸 후 쾌감을 느끼며 바늘과 면봉을 내려놓았다. 내 얼굴엔 빨간 흉터가 다섯 개 남았다.
한국에 오기 전, 마스크를 두 개씩 쓰고 다녔다. 40도가 넘는 날씨에 마스크를 두 개 쓰면 저 속에서부터 답답함이 차올랐다. 하지만 꿋꿋하게 두 개씩 쓰고 다녔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만 그렇게 했다면 민망하기도 하고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겠지만 모두 두 개씩 쓰고 다니니 오히려 한 개만 쓴 사람이 이상해 보였다.
다수가 선택한 특별함은 곧 평범함이 돼버린다.
마스크로운 삶이 답답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바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피부가 좋지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된 6학년 때부터 이마에 여드름이 잔뜩 나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잔뜩 여문 여드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면봉을 들고 달려들거나,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어떨 때는 바늘까지 들고 달려들기도 했는데, 덕분에 내 얼굴에는 그냥 여드름, 빨간 여드름, 짠 여드름, 짜다 만 여드름 그리고 곧 짜야할 여드름이 있었고, 흉터가 잔뜩 남았다.
사춘기 때 시작된 여드름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야 사라졌다. 그만큼 흉터가 함께 남았다.
피부가 좋은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 노메이크업이 어찌나 부럽던지…. 피부과에도 다니고, 시술도 받으면서 관리를 해봤지만, 꿀피부는 되지 않았다. 역시 피부와 천재성은 타고나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풀 메이크업은 아니더라도 눈썹이나 립스틱은 바르고 다녀야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비비크림이라도 발라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내 피부를 감추지 않으면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런데 마스크로운 삶을 시작한 이후 그런 부담이 모두 사라졌다. 그 전엔 없던 자신감까지 생겼다.
문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가 벗어야 할 때였다. 특히 사진을 찍을 때는 마스크를 내리고 찍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엉망인 얼굴이 핸드폰 카메라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아…. 부끄럽구나....
하는 수 없이 필터를 사용했다.
마스크로운 삶과 필터로운 일상은 내 진짜 모습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내 진짜 모습과 sns의 모습의 차이처럼.
형용사와 부사는 명사와 동사를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명사나 동사 앞에 위치함으로써 좀 더 생동감 있는 문장이 되게 한다. 하지만 너무 흔하게 사용하는 형용사와 부사는 오히려 글의 재미를 떨어뜨리고 밋밋한 문장을 만든다고 했다.
특히 “몹시, 매우, 완전, 엄청, 정말” 등의 부사는 안 쓰느니만 못하다고 말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엔 수많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고 표현했다. (스티븐 킹)
글을 쓰다 보면 형용사와 부사를 습관적으로 쓰게 된다. 그 이유는 말을 할 때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고할 때 가장 많이 삭제하는 것도 형용사와 부사이다. 대신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부사나 형용사를 찾아 나선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 중에 적당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내가 직접 형용사와 부사를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마스크로운, 필터로운”처럼 존재하진 않지만, 읽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글을 쓰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노래를 하는 일처럼 예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미술을 창작하고, 기존에 존재하는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창작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일 또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어휘를 이용해 자기만의 글을 창작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스노우 앱을 이용해 찍은 가족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었다.
인친 중 한 분이 필터로운 사진 속 내 피부를 보고 칭찬을 하셨다.
난 그만 부끄러워서 숨고만 싶었다.
이제 다시는 스노우 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필터를 과하게 사용한 사진을 올리는 대신,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찍어 올리고 감성적인 글을 덧붙여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선량스러운 모습이니까.
필터스러운 문장과 일상은, 언제나 많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