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나. 3
요즘 친정 시골집 거실 풍경은 다른 때와 조금 다르다. 이른 아침부터 두 눈에 불을 켜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도쿄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에는 코웃음을 치며,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고 보니 볼거리가 너무 많다. 혼성 양궁 시합을 시작으로 여자 양궁, 남자 양궁, 탁구, 배드민턴, 배구, 야구, 축구, 체조와 역도까지…. 평소엔 관심도 없었던 스포츠에 열광하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이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과 시합을 했을까? 이 생각을 하면 메달을 딴 선수들뿐만 아니라 메달권에 들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존경심이 생긴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싸우던 선수들이, 출전권을 따낸 후엔 메달을 따기 위해 애를 쓴다. 이번 올림픽이 끝나면 4년 뒤 올림픽을 위해 다시 뛴다.
이런 모습은 출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책 출간이 목표인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책 한 권 내 보는 게 소원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출간하고 나니 꿈을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걱정과 두려움이 더 많았다. 마치 올림픽 출전은 했지만, 메달은 따지 못한 심정이랄까.
매달 쏟아지는 신간 중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딴 책들은 오래오래 서점에 남는다. 그렇지 못한 책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다음 책에 대한 기획을 시작한다.
시끄럽게 들려오는 티브이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다 멍하니 앉았다.
여기까지 쓰고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시골집에는 조용히 앉아 글을 쓸 만한 공간이 없다. 넓은 거실 하나에 방 두 개. 안방엔 커다란 돌침대가 놓여있는데, 커도 너무 커서 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안방 벽 한쪽엔 커다란 텔레비전이 붙어있다. 엄마는 돌침대에 누워 벽에 붙어있는 큰 화면의 텔레비전을 본다.
그런데 거실에 텔레비전이 하나 더 있다. 이 집을 지을 때 일부러 거실을 넓게 만들었는데, 자식이 다섯이나 되고, 손자가 11명이나 되지만, 휴가철이나 명절에만 방문하기 때문에 방을 많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시골에 오면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잔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곳도 거실이다.
양쪽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주방 테이블에서 글을 쓰다가 너무 더워 거실 쪽으로 자리를 바꿨다. 아이들이 떠들고,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러워도 글감이 있고, 쓸 말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글 한 편을 완성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하필 여자 역도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부모님까지 거실 소파에 앉아, 어~~ 하며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은 “엄마, 언제 끝나?” “엄마, 다 썼어?” “엄마 옆에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도 글을 완성했다면 난 정말 대단한 작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눈을 역도 경기에 고정시켰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선수는 메달은 따지 못했고 4위에 머물렀지만, 150kg의 역도를 번쩍 든 그녀가 대단해 보이기만 했다.
역도가 끝났으니 이제 정말 글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이미 글 쓸 마음은 안드로메다로~
마감이 글을 불러온다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땐 그냥 노트북을 닫는다. 쥐어짜서 억지스러운 글을 쓰느니, 마감을 하루 미루고 좀 더 좋은 문장을 쓰는 것이 낫다.
글에도 적절한 쉼표가 필요하다. 단어 뒤에 쉼표가 있으면, 그 쉼표 앞의 단어가 좀 더 강하게 다가온다.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읽고 쓰는 나날을 기록한 소박한 글들이 온기, 라는 단어와 어울렸으면 하는 것이다.”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온기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지만, 온기 뒤에 쉼표가 붙은 건 처음 보았다. 나는 쉼표가 붙은 온기, 에서 따뜻함을 더 많이 느꼈다.
쉼표 같은 문장 부호도, 문장에 사용되는 단어도 모두 뜻이 있고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이어가는 문장보다 한 템포 쉬었다 쓰는 문장이 더 좋을 수 있다.
쉼표는 문장에서도 삶에서도 글을 쓰는 일에서도 가장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