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나. 4
한국에 오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건강검진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올해 1월 즈음, 유방에서 뭔가 만져져 급하게 유방 검사를 했었다. 다행히도 염증으로 나왔고,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니 더 이상 만져지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건강검진을 했던 둘째 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여러 번 한 후 많이 회복되었지만,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기까지의 시간은 지난하기만 했다. 언니는 직계가족 중에 최초의 암 환우가 되었고, 나와 다른 언니들에게는 유방암 가족력이 생겼다.
사실 가장 염려되었던 것은 대장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설사를 하는 편이었고, 삼겹살처럼 기름진 음식이나 라면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바로 신호가 왔다. 대장내시경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기본적인 암 검사는 무료였지만, 위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 비용이 들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기에, 돈이 들더라도 해보고 싶었다.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장을 깨끗이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3일 전부터 먹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견과류, 나물, 해조류, 잡곡, 씨가 있는 과일 등은 피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장 내벽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으며, 음식 찌꺼기가 남아있는 경우 내시경의 시야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전에는 쌀죽이나 미음만 먹어야 하며 오후 4시 이후에는 물만 마실 수 있다.
검사받기 전날 저녁 7시부터는 대장을 비우기 위한 약을 먹어야 한다.
10년 전에는 4L나 되는 큰 통에 물을 가득 넣고 약을 섞어 마셔야 했다. 지금은 500mL의 통에 약 한 포를 섞어 마신 다음, 물 1L를 더 마셔야 한다. 옛날보다 마셔야 하는 물의 양은 절반 이상 줄었지만, 1500mL를 한 번에 마시려니 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옛날에는 4L를 어떻게 마셨을까?
약을 마시면서도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 된다.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면서 용액이 장벽 여기저기에 잘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약을 마시고 조금 기다리면 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소식이 온다.
처음엔 찌꺼기가 있는 대변을 보지만, 20회 정도 보고 나면 찌꺼기가 없는 노란 물이 나온다.
휴~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어젯밤과 같은 방법으로 약을 마셔야 한다.
500mL의 용기에 약을 섞어서 꿀꺽꿀꺽 마셨다. 약간의 오렌지 맛이 나는 약이 역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장을 깨끗하게 비우기 위해서는 참고 마셔야 했다. 그 후 1L의 물을 더 마셨다.
신호가 여러 번 왔고 화장실을 스무 번쯤 들락 거린 후, 드디어 장을 완전히 깨끗하게 비울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자책 만들기” 강의였다.
혼자서도 전자책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방법을 알려주고, 코칭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고민만 하다 끝날 것 같아 일단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기획서를 만들고, 강의안을 만들었다.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날짜와 강의 비용이었다. 평일 저녁에 하면 너무 피곤할 것 같고, 주말에 하면 다들 쉬는 날이라 힘들 것 같았다.
강의 비용은 다른 사람들의 강의를 참고하여 책정했다. 그래도 내 지식과 노하우를 알려주는 강의인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모집공고문을 만들어 야심 차게 올렸다. 과연 몇 명이나 신청할까?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신청자는 거의 없었다.
너무 비쌌던 것일까? 아니면 커리큘럼이 별로일까? 내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전자책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마음을 비우는 일도 장을 비우는 일과 같았으면 좋겠다.
약을 먹고 물을 마시면 여기저기 남아있는 불안의 덩어리와 자괴감의 찌꺼기가 깨끗하게 비워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약은 없으니, 내 마음을 좀 더 돌보는 수밖에.
조용히 모집공고문을 내렸다. 야심 차게 도전한 결과는 초라했지만, 이 또한 내 경험으로 남았다고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꺼내어 쓸 수 있도록 노트북 바탕화면에 작은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후회하며 나를 몰아세우는 것 대신, 괜찮다고 나중에 다시 잘하면 된다고 토닥이는 일이 바로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이런 초라한 경험도 글감이 되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가감 없이 쓰고 남기리라~ "
비장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을 비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하고 싶었던 그 일에 대한 마음을 비웠을 때 예상치 못했던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일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대장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매우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