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목적어가 이끄는 문장

글과 나. 6

by 선량

나는 지금 부산에 있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자랐고, 전라도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내가 부산에 대해 아는 것은 초록색 창에 검색하면 나오는 "부산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과 "부산 맛집" 정도인데, 이것도 코로나 시기이다 보니 이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부산에 여행을 온 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오전엔 EBS 온라인 학교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이들이 "엄마~ 도와줘~"하고 부르면 달려가 일대일 맞춤 담임선생님이 되고, 아이를 가르치다 뒷목을 여러 번 잡고, 오후엔 현장학습을 위해 가까운 곳을 어슬렁거리고, 밤이 되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편집을 한다.


그렇다고 부산에 정착을 하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가 지내는 곳은, 거실과 침실과 주방이 확실하게 구분되어있긴 하지만, 공간을 구별해주는 문은 없어서 어디서는 책을 읽고, 어디서든 잠을 자며, 어디서든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래도 화장실 문은 있어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게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이 화장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에 없던 부산에 갑자기 와서 살고 있는 이유는 다음 행선지인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 남편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정착과 새로운 나라로의 도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다시 한번 새로운 곳에 가서 살아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라는 시대적 상황과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생이라는 교육적 특성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 고민은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갈까? 말까? 가면 좋을까? 힘들까?"

"애들아 어디서 살고 싶니?"

"애들아 한국에 오니 한국에서 살고 싶진 않니?"


계속되던 고민은 최근에서야 멈췄다. 결국 우리는 10년 전에 방글라데시로 떠났던 그 목적을 떠올렸고, 다시 한번 목적이 이끄는 데로 발걸음을 내디뎌보기로 했다.

그때는 두 사람만의 결정이었지만, 지금은 네 사람의 결정이니 그때보다 지금이 좀 더 견고한 발걸음이 아닐까.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주어와 동사일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주어와 동사를 반복적으로 쓰면 어쩐지 지루한 문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양한 주어와 동사를 쓰고, 생략도 하면서 변화무쌍한 주어와 동사를 써야지만이 재미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주어, 동사와 함께 문장의 주성분으로 간주되는 것은 바로 목적어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목적어라고 생각한다. 목적어에 따라서 동사가 바뀌기 때문이다.

목적어에 음식이 나오면 먹다는 동사가, 목적어에 꿈이 나오면 꾼다는 동사가, 목적어에 사람이 나오면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이해하는 동사가 나오기도 한다.

반면 문장에 목적어가 빠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청춘 같은 문장이 되고 만다.

청춘이 불안정 하긴 하지만, 어떤 목적이라도 세울 수 있듯이,

문장에도 적절한 목적어를 갔다 붙이면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확실하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욕망 목적어"는 가장 무시당하지만, 가장 필요한 목적어이기도 하다.


"나는 라면을 먹고 싶다."

"나는 책을 읽고 싶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하고 싶다"는 동사 앞에 쓰이는 "욕망 목적어"는 꼭 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 목적어를 이루어 냈을 때 우리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자기는 무엇을 꼭 해보고 싶어?"

"글쎄.... 그게 뭘까.... 그걸 모르겠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그걸 모르겠어."


우리 가정의 가장인 남편은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한 목적만 남은 그는 부산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지내고 나와 아이들은 친정집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목적을 조금 바꿨다.

돈이 들더라도 좀 더 넓은 방으로 바꾸고(비록 공간을 나눠주는 문은 없지만), 학교에 보내려던 아이들을 EBS로 학습시키고(비록 여러 번 뒷 목을 잡아야 하지만), 잘 모르는 부산을 여행하면서,

우리 네 가족이 함께 행복해지자는 목적을 따라가기로 했다.



남편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욕망 목적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늦은 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 나는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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