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좋아하나요? 대화체를 좋아합니다.

글과 당신. 12

by 선량

6개월 넘게 재택근무를 이어오고 있는 남편과 온종일 한 공간에 머물다 보니 대화가 점점 줄어든다. 일상적인 삶을 살 때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 만났던 사람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일이 서로의 시야 안에서 벌어지고, 청취 가능한 범위에서 일어나니 물어볼 것도 궁금할 것도 없다.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 적당한 거리, 적당한 관심이 필요하다. 적당하다는 게 얼만큼인지 손가락으로 가늠할 순 없지만, 서로 할 말이 있는 만큼은 아닐는지.



단절되었던 대화가 다시 활발하게 시작된 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와 마음에 대해 궁금해하던 그는 한동안 그런 부류의 책만 읽었다.

‘그냥 쉽게 살자,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내 마음의 주치의,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힐링, 기쁨에 접속하라’


비슷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으며 마음을 공부하던 그가 마음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깊은 사유와 성찰이 담겨 있었다. 반대로 난 생각이 매우 단순한 사람이다.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파헤치지 않는다. 뭐든지 적당히, 그러려니, 나와는 상관없으니 괜찮다며 웃어넘긴다. 마음은 마음이고, 생각은 생각이며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일 뿐이다.


남편이 이런저런 말을 할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때가 많았다. 그건 대화라기보다 일방적인 서술에 가까웠다. 내가 공감을 하든 안 하든 아무 상관없는 독백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편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혼자서 조용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았다. 그런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나 보다.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고민하다 서로 다른 성향을 존중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마음이나 감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과거의 일들을 질문했다. 첫사랑은 어떻게 만났는지, 교회는 어떻게 다니게 되었는지, 어릴 적에 가장 신나는 일은 무엇인지.

질문에 대답하는 그를 보니 웃음이 났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그렇게 이뻤느냐 농담을 하고, 지금도 보고 싶으냐 놀려 댔다.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무 문장 부호 없이 마침표로 끝나던 일방적인 서술에 큰따옴표가 붙었다. 드디어 대화체가 시작되었다.


책을 읽을 때 유독 대화체를 좋아한다. 서술된 글은 건너뛰고 대화만 빠르게 읽고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더 그런 편이다. 대화 속에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주요 내용이 모두 담겨있고 화자의 감정선도 느낄 수 있다.

에세이를 쓸 때 꼭 서술형으로 써야 하는 건 아니다. 직접적인 설명을 피하고 대화를 넣으면 독자들이 스스로 상상할 수 있다.


“첫사랑에 대해 말해봐. 그 누나를 왜 좋아했어?”

“음... 엄청나게 밝은 사람이었어. 그렇게 쾌활한 사람 본 적이 없어.”

“눈이 컸어?”

“컸었나? 쌍꺼풀이 있었어. 아니 없었어... 있었나?”

“기억 안 나는 척하지 마라. 쌍꺼풀 없이 눈이 크긴 힘들지.”

“아니야, 쌍꺼풀 없이 눈이 컸어.”

“그냥 예뻤다고 하시지. 키가 컸어?”

“아니, 작았어. 한... 160 정도?”

“뭐? 그럼 내가 작아 보여?”

“자긴 적당하지.”

“나 160cm 인대??”

“음.... 몰라.”



그의 첫사랑은 쌍꺼풀 없이 눈이 크고 키는 160 cm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녀의 외모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고,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대화체로 쓰면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말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 같다.


큰따옴표를 표시했다고 모두 의미 있는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과 상관없는 대화,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는 대화, 상황을 보여주기 힘든 대화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남편이 혼자 주저리주저리 했던 말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그건 독백이었던 것 같다.

독백하고 싶을 땐, 큰따옴표 대신 작은따옴표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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