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사같은 인간관계

글과 삶. 17

by 선량

“언니, 잘 지내? 나야.”

오랜만에 옛날 직장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병원을 그만둔 지 거의 15년이 돼가는데도 연락이 이어지고 있는 걸 보니 과거에 직장 생활을 허투루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오랜만에 연락한 후배는 내 프로필 사진에 있는 책 표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는 너무 놀랐다고 했다. 병원에서 선후배로 만나 함께 뛰어다니며 일을 했고, 성격 이상한 선배 간호사에게 깨질 때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좁은 기숙사 방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 먹던 사이였다. 지금 그녀는 여전히 병원에 다니고 있고 나는 인도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과거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한 사이였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의 페이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한 번씩 연락이 오면, 우리의 페이지는 다르지만, 장르는 역시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와 나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은 다르지만 과거엔 끈끈했다는 반전의 접속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문장에서 접속사는 낱말이나 문장을 이어주는 품사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그러나, 그러므로 등이 바로 접속사다. 고등학교 국어 시험에 빠지지 않고 나온 문제이기도 하다. “빈칸에 들어갈 접속사는?” 이런 문제는 학생들에게 점수를 거저 주기 위한 문제였다. 그만큼 학교 다닐 때 배운 접속사는 중요하면서도 쉬운 품사였다.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쓰는 품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글쓰기 책에서는 접속사를 적당히 쓰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적당히’ 하는 일이다. 엄마의 레시피에 빠지지 않는 소금 적당히는 도대체 얼만큼인지, 아이들의 적당한 게임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잔소리 좀 적당히 하라는 남편의 트집은 왜 그렇게 얄미운지.

도대체 접속사는 어떻게 적당히 써야 하는 걸까?

엄마의 ‘소금 적당히’를 이해하려면 요리를 하면서 소금을 조금씩 넣어보고 직접 맛을 봐야 하듯이, 접속사 사용을 자제하고 꼭 필요할 때만 쓰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직접 써보고 소리 내어 읽어봐야 한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접속사를 많이 쓰는 편이다. 하지만 퇴고하면서 가장 많이 삭제하는 것도 접속사이다. 소리 내 읽어보고 접속사를 빼도 의미가 전달된다면 미련 없이 삭제한다.


인간관계도 이런 접속사 같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들과 남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에게 딸려 오는 “그리고” 같은 관계이다. 멀리 있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가끔 연락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는 “그래서” 같은 관계이고, 아주아주 오랜만에 연락해 내 과거를 떠올려 주는 후배 같은 사람은 “그런데” 같은 관계이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SNS로 만난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은 그럼 어떤 관계일까?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조금씩 스며들어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이니까, “게다가” 같은 접속사가 아닐까?

이런 관계 중 어느 관계가 좋고 어느 관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문장에 모든 접속사를 쓸 필요는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접속사도 인간관계도 적절히 사용하고 유지해야 한다. 가끔은 생략도 하고 필요할 땐 연락도 하면서.

우리의 삶은 각자 다른 페이지에 속하지만, 모두 에세이라는 하나의 장르 속에서 살아간다.

접속사와 함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담백한 맛, 담백한 사람, 담백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