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플래시 백

글과 삶. 20

by 선량


자신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했던 행동이나 말, 생각이나 느낌을 쓴다는 말인데 주로 지난 과거를 쓰게 된다. 즉, 에세이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과거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어서, 끊임없이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과거에 내가 했던 말, 내가 했던 행동, 생각과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이미 치유가 되었더라도 흉터로 남아서 한 번씩 가려움을 일으키고,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은 손수건이 되어 지금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한다. 오래된 과거는 잊힐 뿐,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글을 쓰다 보면 잊고 있었던 과거와 직면할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그 기억을 글로 써야 할 때이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은 플래시백 기법이다. 플래시백이란 과거 회상을 나타내는 기법으로 현재 시제로 진행하는 영화에서 추억이나 회상 등 과거에 일어난 일을 묘사할 때 나오는 장면을 말한다. 플래시백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인과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과거를 보여주어 그의 성격을 해명하는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참고: 다음 백과)



내가 주로 이용하는 플래시백은 내 어린 시절, 소심하고 자존감 없는 모습들이다.

연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을 설명하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비교한다. 또 다른 하나는 방글라데시에 살던 때의 장면이다. 낯선 모슬렘 나라에서 어떻게 외로움을 이겨내고 적응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장면을 떠올리면 그렇게 찌질할 수가 없다. 밤마다 다른 블로거들을 염탐하며 부러워했고, 구독자가 많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한없이 작아졌다. 글이랍시고 수첩에 적어 둔 문장을 읽어 보면 창피하기 그지없고, 연필로 끄적여 놓은 글씨는 개발새발이다.

노력 끝에 원고를 써서 투고하긴 했으나, 대차게 까이기만 했고, 나름 노력한 티를 내보려 PPT로 작성한 출간 기획서는 지금 봐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에세이는 틀린 듯하여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허접한 동화와 엉망인 그림으로 동화 전문 출판사에 투고까지 했으니, 얼마나 무모하게 들이댔던지. 이런 찌질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미화하여 말하고 있지만, 많이 부끄럽다.


과거에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고, 넷플릭스 드라마나 보면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가도 미래의 내가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했을 때, 여전히 찌질한 모습만 쓰게 될까 봐 걱정된다. 나도 모르게 정신을 번쩍 차리고 다시 노트북을 열어 뭐라도 쓰게 된다.

분명한 것은 비록 찌질 하긴 했지만, 과거의 내가 글을 썼기 때문에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고, 미래의 나 역시 어떠한 글을 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래의 내가 플래시백으로 글을 쓸 때, 그 글 속의 나는 조금만 더 멋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부러 멋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멋짐이 드러나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간다. 그건 유행에 민감한 것과는 또 다른 멋짐이다. 무심하게 걸쳐 입은 체크무늬 남방이, 와인색 카디건이, 굽 낮은 스니커즈가 눈길을 잡아끈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유행에 민감한 글 대신, 내 본연의 글체가 드러나는 글. 멋지게 보이려고 잔뜩 힘이 들어간 글 말고 나의 찌질함이 그대로 보이는 글. 잘 읽히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러 있는 글. 이건 너무 큰 욕심일까?

좋은 글, 좋은 책을 보면 한없이 부럽고 나는 점점 작아진다. 나는 글쓰기 재능이 없음을 자꾸만 알게 된다. 하지만 쓰기를 멈추기엔 너무 오래,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게 된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이다.
-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





재능 없는 꾸준함을 믿어도 될까? 꾸준히 쓰다 보면 슈퍼파워 힘이 생길까? 오십 대의 나는 사십 대의 나에게 꾸준히 써 줘서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기를. 꾸준함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나누어 주는 작가가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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