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정말 삶을 변화시키는가?

글과 삶. 21

by 선량

홍 군이 물었다.

“자기도 우울증이 있었어?”

“있었지?”

“언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있었고, 산후 우울증도 있었고, 방글라데시에 처음 갔을 때, 인도에 처음 왔을 때도 있었지. 요즘도 가끔 우울해지곤 하지.”

“우울증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극복했어?”

“글쎄……. 예전에는 우울증이 한 번 오면 계속 눈물 나고 다 싫어지고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은 우울증이 와도 가볍게 왔다 가는 것 같아.”

“자긴 정신력이 강한 것 같아. 요즘은 특히 더.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좀 변했나?”

홍 군과 대화 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았다.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변하지 않은 건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집안일이 주 업무이다. 글 쓰기 전의 삶과 후의 삶에 크게 변화가 없다. 여전히 해외에 살고 있고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한 달을 산다. 아이들이 날 무시하는 투의 행동이나 말을 하면 버럭 화를 내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건 그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하지만 확실히 우울증에 빠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우울한 기분이 들더라도 오래가지 않는다.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 속에서 시작된 존재에 대한 의문은 삶을 관통해서 나를 짓눌렀다.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철저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이룬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내로, 엄마로 사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힘에 겨웠다. 아주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바빴다.

글을 쓰면서 존재에 대한 주관적인 의문은 객관화되었다. 내 상처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픔이 떠오르면 뒷방 구석으로 밀어 놓는 것 대신 생각을 부여잡았다. 글로 쓰고, 눈으로 다시 읽고, 글을 다듬는 모든 과정이 나를 삶 앞에서 객관화시켰다. 슬픔이 나 때문이 아니라고 글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내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일부러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 고유한 모습도 충분 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우리 엄마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말하는 시간에 큰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기뻤다. 자존감은 저절로 생겨났다. 나는 더 이상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오래된 습관 하나가 있었다.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을 꼼꼼히 읽고 피드백해 주었다. 그분의 메일을 읽고 내 글쓰기 습관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겸손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묵은 먼지 같은 것이었다. 이 습관이 사라지지 않고 내 글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혹시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뭐라고 생각할지, 내가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식하는 습관이다. 나는 그게 역지사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낮추고 낮추었다.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잘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었다. 작가가 되긴 했지만 내가 쓰고 있는 글 앞에서 자신이 없었다. 이런 마음이 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교만이라고 했던가? 난 겸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고, 당신은 충분하다고,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써 놓은 글들을 다시 읽으며 진짜 겸손해야 할 문장과 겸손인 척하는 문장을 골라냈다. 케케묵은 내 상처도 함께 삭제했다. 글은 이렇게 내 상처의 고백을 받아주었고 필요 없는 문장과 기억을 삭제시켜 주었다.


글을 아무리 많이 써도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삶을 마주하는 마음이 변한다. 마음 이 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부가 변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변하는 것이다. 세계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우울해하는 배우자를 토닥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글쓰기는 정말 삶을 변화시키는가? 궁금하다면 당신이 직접 써 보길 바란다. 그럼 아마도 내 대답이 굳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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