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말걸 그랬나보다

에필로그. 22

by 선량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년 반.

내가 쓴 책은 종이책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 들리기도 했고, 또는 냄비 받침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 SNS에 쓴 글들은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매년 7월 초가 되면 입을 여름옷이 없어서 새 옷을 사듯, 내 글 역시 매번 써서 저장하지만, 꺼내 쓰려니 쓸만한 게 없다.


어느 책에서, “작가의 글쓰기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가 가진 이야기가 중요하다.”라는 글을 읽었다. 그 후 글이 써지지 않았다. 뼛속 깊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부인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뭐라도 쓰면, 쓰기만 하면 저절로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될 거라고 주문을 걸었다. 3년 넘게 글을 쓰다 보니, 분명 글 쓰는 속도는 빨라졌다. 망설이지 않고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책을 읽으며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골라 써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경험을 모두 써버리고 나니, 더 이상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떠오르지 않은 소재를 고민하며 오늘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자책했다.

글을 쓰라고 시킨 사람도 없고, 꼭 써야 할 의무도 없건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채찍과 독자라는 당근은 나를 자꾸만 쓰게 만든다.


나는 왜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글을 쓰지 말 걸 그랬나 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쓸 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음을 자책하지도 않았을 텐데, 평범하기만 한 내 일상이 지겹게 느껴지지도 않을 텐데, 뭔가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브런치 조회 수 같은 거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스타 팔로워 수 늘리려 애를 쓸 필요도 없었을 텐데. 나만의 경험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혼자 책을 만드는 수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는 어쭙잖은 충고 따위 남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과거의 나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소심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SNS 창문을 먼저 두드리는 일도, 내가 쓴 글을 자랑할 일도, 남부끄럽게 내가 만든 책을 대놓고 홍보해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수만, 수천 명의 글 쓰는 사람들 중에 굳이 내가 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을까?

어쩌다 난 글 쓰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어쩌다 눈깔사탕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처럼 글쓰기의 맛을 알아버려서, 쪽쪽 빨다 남은 사탕을 버릴 수도 없다. 낯 뜨거운 과거의 글을 지우고 지웠다. 옷장 속에 얇은 여름옷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은 것처럼, 내가 쓴 글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면서 또 쓰고 있으니, 습관이 된 건지, 중독이 된 건지.

내가 글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글이 나를 떠나가지 않는 건지.

인연은 돌고 돌아도 언젠간 만나는 것처럼,

나도 결국엔 쓰기를 만나게 될 운명이었을까?


3년 전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왜 좀 더 빨리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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