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19
모든 자연현상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법칙을 알아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과학자라고 부른다.
유명한 과학자 뉴턴은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중력의 법칙, 즉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냈 다. 이 지구에 있는 모든 물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둥그런 지구의 아랫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윗동 네에 사는 사람들도 넘어지지 않고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살아갈 수 있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하는데,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일수록 중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첫째 아이가 한참 우주선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우주와 우주선 책을 읽고 우주선 그림을 그렸다. 아폴로 11호와 13호 책을 읽으면서 엄청나게 큰 우주선이 어떻게 중력을 이기고 먼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우주선에 붙어있는 추진 로켓 덕분이다. 아폴로 13호에 사용된 새턴 V로켓은 크기가 111m로 총 3단까지의 로켓이 부착되어 있다. 즉, 연료 를 다 쓴 1단 로켓이 떨어져 나가면 2단 로켓의 엔진이 가동되고, 2단 로켓의 연료가 다 되어 떨어져 나가면 3단 로켓의 엔진이 가동된다.
일반 사람이 떠올리는 우주선은 엄청나게 크고 거대한 기계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우주선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그중 일부분일 뿐이다. 발사대에 놓여있는 거대한 기계, 그중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원뿔 모양이 바로 우주비행사가 앉아있는 우주선이다. 나머지 부분은 이 우주선을 발사시키기 위한 로켓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추진 로켓의 어마어마한 힘 덕분에 우주 비행사는 우주선을 타고 달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법칙이 존재한다. 인체의 신비로운 법칙을 찾아내고 고치는 사람을 의사 라 부르고,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을 심리학자라고 부른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니 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법칙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바로 ‘마음 중력의 법칙’과 ‘몸과 마음 하나로 법칙’이다.
중력을 거스를 만한 추진 로켓이 없을 때, 사람의 마음은 뉴턴의 사과처럼 아래로 데굴데굴 떨어지는데 바 로 ‘마음 중력의 법칙’ 때문이다. 마음이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몸도 하나가 되어 중력의 영향을 받고 만다. 이건 바로 ‘몸과 마음 하나로 법칙’ 때문이다. 결국, 침대, 소파 또는 바닥에 몸을 떨어뜨리고 꼼짝하지 않게 된다.
직장인의 추진 로켓은 매달 나오는 월급이나 성과급 또는 승진이 아닐까 싶다. 20년째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언니는 10년째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아직도 성실히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승진까지 하게 되어 “회사 그만둘 거야.”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학생들에게는 기말고사나 성적 또는 친구 관계일 것이고 청년들에게는 취업이나 사랑 또는 연인일 것이다. 요즘은 여행을 다니기 위해 직장을 다니거나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추진 로켓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새로운 사랑을 할 수도 없는 중년의 아줌마인 나에게 마음의 중력을 거스르고 솟아오르게 할 추진 로켓은 과연 무엇 일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커가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빠른 운동신경이나 빠른 언어 능력은 가장 좋은 추진 로켓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속도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내 마음은 들썩이지 않았다.
한때는 SNS가 그것이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블로그에 포스팅 했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일은 잔잔한 내 감정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켰다. 훌 쩍 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맛집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는 이웃들 의 모습들. SNS는 무거운 질량을 가지고 있어서 중력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하는 짐이 되었다.
‘내 일상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SNS에 사진이나 글을 올릴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칫 요란한 빈수레 같은 글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 최대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짧은 글을 올린다. 마찬 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 부러움이나 질투심 같은 일차원적 감정을 지지와 공감이라는 필터로 한번 걸러낸다.
‘마음 중력의 법칙’과 ‘몸과 마음 하나로 법칙’을 이겨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추진 로켓은 바로 ‘쓰기’이다. 글 을 쓰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래로 곤두 박질치던 마음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흩 날린다. 마음이 그러하면 몸도 중력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드러누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잡 는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마감’이라는 게 있다. 글이 도저히 안 써지다가도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뭐라도 써진다고들 한다. 나에게는 마감이 없다. 재촉하 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난 오늘도 쓴다. 어제도 썼고, 내일도 쓸 것이다.
이것이 뭐라고 나는 쓰는 삶을 선택 했던 것일까?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시작한 쓰기의 삶. 매일 쓰다 보니 그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땅에 떨어진 사과는 결국 썩는다. 바닥에 떨어져 꼼짝하지 않았다면 내 감정도 결국 썩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이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며 마음의 중력을 거스를 수 있어서.
썩어 없어지는 것 대신 글을 남길 수 있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