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나. 8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또는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읽고 슬프거나 기쁘거나 무섭거나 통쾌함을 느끼는 것. 어찌 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와 비슷하다. 하지만 영상매체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글자를 읽고 머릿속으로 장면이나 등장인물의 모습을 떠올린다. 대화를 읽으며 주인공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책은 내가 쓰지 않았지만, 상상은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경험, 내 기준에 의해 장면과 인물이 만들어진다. 열 명이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의 머릿속에는 서로 다른 느낌의 주인공이 만들어진다.
신기한 것은, 슬픈 내용의 글을 읽으면 눈물이 나고, 재밌는 내용을 읽으면 웃음이 난다는 사실이다. 그저 눈으로 글자를 읽었을 뿐인데, 눈으로 들어온 활자가 뇌로 전달되었다가 다시 마음을 건드려 눈물이 나오게 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몸의 감각과 감정 사이엔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좀 많이 우는 편이다. 별로 슬픈 내용도 아닌데 질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저자는 절대 “이건 매우 슬프다. 너무너무 아프다,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담담한 내용의 글인데, 이상하게 몰입되고 나는 엉엉 울고 있다. 이게 작가의 역량인 것일까?
드라마나 영화는 좀 다르다. 감동의 폭은 비슷하겠지만, 감독이 연출한 장면과 인물이 등장한다. 우리는 연출 된 감정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주인공이 울면 따라 울고, 주인공이 웃으면 따라 웃는다. 공포스러운 음악과 비명이 들리면 무서워서 눈을 질끔 감는다. 책에는 없는 소리와 화면이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감동을 주는 글은 영화 같은 글일까? 장면과 소리와 주인공의 모습을 글로 써내는 것. 이것이 좋은 글일까?
좋은 글이 쓰고 싶어질 때마다 드라마를 본다. 어쩌면 드라마를 보고 싶어서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게 우선인지는 모르겠다. 드라마는 한번 보면 그 장면이 머리에 남고 글은 써 놓으면 원고가 남는다.
드라마처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아주 자세한 것까지 쓰는 연습을 해보았다. 사소한 배경,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옷, 표정, 말투, 걸음걸이 등등…. 다 써 놓은 글을 읽어보니, 상상할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본 감각을 뇌로 전달해 감정을 건드려 줘야 하는데, 글 속에서 이미 감정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촘촘하게 써 놓은 설명을 다시 삭제했다. 어디까지 설명하고 묘사해야 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건드려 줘야 하는지… 이건 글을 쓰는 내내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내가 쓴 글을 어느 독자가 읽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써 놓은 글의 의도가 잘 전달될지, 아니면 다르게 해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쉼표 하나, 점 하나. 행간 하나에도 저자의 깊은 뜻이 담겨 있으니.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글을 쓰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어렵다.
역시, 글쓰기와 드라마는 다른 것이었다.
언젠간 이 숙제도 잘 해치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