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글쓰기

글과 나. 9

by 선량

처음 커피를 마신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나보다 여덟 살 많은 큰언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꼭 커피를 마셨는데, 그 옆에서 지켜보며 한 모금씩 얻어 마셨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언니는 나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했다.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셋. 지금처럼 봉지 커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엔 작은 티스푼으로 완벽한 비율을 맞춰 커피를 조제해야 했다. 고객이 달달한 커피를 원할 땐 커피 둘, 설탕 셋, 프림 셋으로 비율을 조금 다르게 하기도 했다.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설탕물을 마신 것과 다름없었다.

시골에서 부모님과 살다 열세 살에 도시로 전학 왔다. 언니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이상한 책임감을 느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다 왔기에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시골에서 힘들게 일하고 계시는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밤을 새워서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밤을 새우면서까지 공부할게 아니었는 데, 고 3이었던 둘째 언니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셋째 언니의 영향을 제대로 받았던 모양이다.

시험공부는 으레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달달한 다방 커피였다.


커피의 맛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마시면 안 된다고 말리지도 않았다. 되려 내가 타 준 커 피가 맛있다며 칭찬을 했다. 그 말 때문이었는지 나는 점점 더 커피에 중독되어 갔다.

중학생 언니를 따라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도서관엔 자판기가 있었는데 또래 친구들이 코코아나 율무 차를 마실 때 난 당당히 커피를 뽑아 마셨다. 2시간 정도 공부하고 커피 한잔 마시며 쉬고, 또 공부하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내 몸엔 카페인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서도 커피를 끊지 못했다. 오히려 온종일 커피를 달고 살았다. 이상하게도 중고등 학생 때는 뒤돌아서면 졸렸다. 심지어 친구는 나에게 “또자”라는 별명을 붙어주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또 잔 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영양소가 부족했던 것인지, 정신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졸렸다. 그 졸음을 이기기 위해 또 커피를 마셨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역시나 커피를 달고 산다. 달달한 봉지 커피, 쓴맛이 나는 아메리카노, 드립 커피, 더치커피. 가리지 않고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 카페인이 안 들어가면 정신이 들지 않아 공복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글을 쓸 때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심심해서, 뭐가 먹고 싶어서, 배가 불러서, 배가 고파서, 졸려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셔도 커피의 맛은 잘 모른다. 커피 애호가라면 콜드 블루와 일반 아메리카노의 차이를 알고, 커피 원산지와 로스팅 정도에 따라 특별히 선호하는 원두가 있을 텐데 나에겐 그런 게 없다. 커피는 커피이기 때문에 마실 뿐이다.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카페인을 마시는 건지도 모르겠다. 카페인에 중독되어 이런저런 마실 핑계를 대고, 핑곗거리가 없으면 그냥이라도 마시는 커피.

내 몸에 층층이 쌓여 있는 카페인 섭취를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오른쪽 측두엽부터 두통이 시작된다. 그런 날엔 꼼짝없이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드러누워야 한다. 몇 번이나 커피를 끊으려 시도했다가 밀려오는 두통 때 문에 포기하고야 말았다. 결국 난 커피의 노예가 되었고 기꺼이 카페인에 내 영혼을 맡겨버렸다.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보니, 글쓰기도 커피와 다를 바 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페인 중독이나 글쓰기 중독은 어찌나 비슷한지, 글쓰기의 진짜 맛도 모른 채 중독되어 간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초조하다. 마감도 없고 재촉하는 곳도 없는데 숙제를 끝내지 않은 학생처럼 안절부절못한다. 글감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글감마저 없을 때는 자괴감마저 밀려온다.

커피 지옥에 빠져 카페인에 취해버린 것처럼 글쓰기 지옥에 빠져버렸다. 왜 그렇게 글을 쓰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다. 왜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것과 매 한 가지이다.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의 저자 아인잠 작 가님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남편과 졸혼을 선언하고 세 아이를 데리고 독립을 한 뒤였다. 경제적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지 못했기에 글쓰 기 교실을 운영하고 책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님은 좌절하기는커녕 글감을 생각했다고 한다. 병원에서의 에피소드를, 자신에게 닥친 병에 대한 이야기를, 뇌졸중에 걸린 작가 이야기를 쓸 생각을 하니 즐거웠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신기한 구석이 있다. 글을 쓰는 그 순간은 창작의 고통으로 힘들어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글쓰기로 연결시킨다. 힘든 일을 겪으며 쓰러져 발버둥 치다가도 그 상황을 글감으로 단순화해버린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나에게 글감이 생겼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글쓰기의 힘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바라는 것은 글쓰기도 커피처럼 오랫동안 중독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쓸 말이 없어 방황도 할 것이고, 쓰는 게 지겨워 그만 쓰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편두통 같은 금단증상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쓰는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그 일이 글쓰기라서 정말 다행이다. 손가락 힘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쓸 수 있을 테니.

그래서 나는 커피처럼 글쓰기를 먹고 마시고 즐기고 음미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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