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로운 일

글과 나. 10

by 선량

아이들이 가끔 팬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마트에서 파는 팬케이크 믹스를 사다 우유에 섞어서 적 당한 크기로 구워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아침 식사로 종종 준비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번거롭지도 않다. 식사 후 씻어야 할 그릇이 많이 나오지 않아 간편하다.

어디 팬케이크뿐이랴? 요즘은 뜨거운 물만 부어 놓으면 완성되는 국, 전자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되는 요리가 쏟아져 나온다. 딱 한 사람 먹을 만큼의 음식이 담겨있어 먹고 버리기만 하면 되니 설거짓거리 걱정도 없다.


얼마 전에도 아이들이 팬케이크를 요구했다. 하필 그날따라 팬케이크 믹스가 똑 떨어지고 없었다. 고민하다 팬케이크 만드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밀가루, 버터, 계란, 우유, 설탕이 필요했다. 모두 집에 있는 재료들이라 한번 해보기로 했다.

버터를 걸쭉하게 녹인 다음 계란과 설탕을 넣고 잘 저어준다. 이때 소금을 조금 넣어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우유를 적당히 넣고 다시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밀가루를 적당히 넣어준다. 너무 묽어서도 안 되고 너무 되직해도 안 된다. 드디어 팬을 달궈 적당한 크기에 구 워 주면 끝!

문제는 시중에 팔던 팬케이크 믹스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설탕이 더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은데, 엄마가 만들어준 팬케이크에 맛을 들인 아이들이 더는 과거의 것을 먹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간단하던 팬케이크가 이제는 아주 번거로운 요리가 되었다.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요리 후에 나오는 설거짓감은 또 어떻고. 버터가 잔뜩 묻은 그릇과 거품기, 숟가락, 접시, 프라이팬, 뒤집게까지. 내 발등을 내가 찍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내가 만든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은 꽤 사랑스럽다. 대기업 제품을 이긴 기분이랄까?

요리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과 많이 닮았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다. 여러 SNS에 글을 쓸 수 있고, 출판사를 통하지 않더라도 독립출판으로 작가가 될 수 있다. 많은 글쓰기 수업이 있고, 작가 되기 수업이 있다. 어느 곳에서는 속성으로 작가가 되는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여러 가지 글쓰기 레시피 중에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중에서 내가 경험해 본 것은 온라인 메모 모임과 SNS에 글쓰기뿐이었다. 이 짧은 경험으로 책 한 권을 써야 했을 때, 아마추어가 프로를 흉내 내는 기분이 들었다. 부담이 컸지만 잘 해내고 싶 은 마음이 컸다.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출판사의 요구에 맞게 다시 내용을 수정하고 삭제하고 추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퇴고에 지쳐갈 때 즈음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책을 하나 만드는 일이 이렇게 수고로운 일임을 그 전엔 몰랐다. SNS에 간단히 쓰는 일이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일이라 면 가족을 위해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수고하여 직접 조리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짓기 위해 끝없이 수고하는 일과 같다.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생긴 후,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직접 글을 다듬고 직접 표지를 만들고 직접 내 손으로 다듬은 책. 하지만 편집을 어떻게 하는지도, 표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기 에 막막하다. 그래도 일단 저질러 보기 위해 글을 쓴다.

준비된 재료도 없이 완성된 음식을 바라는 것은 우유를 먹기 시작한 아기가 짜장면을 보며 군침을 흘리는 일과 같다는 것을 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분량을 채우는 일이다.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서 한 꼭지에 담겨야 할 글의 분량이 필요하다. 호기롭게 글을 시작하지만 쓰다 보면 쓸 말이 생각나지 않고 멈춰 버리고 만다. 어서 빨리 결론을 내고 싶고 한 꼭지의 분량을 끝내고 다른 주제의 글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얕은 생각과 조바심은 글 쓰기의 최대 적이다.

지금껏 여러 개의 수고로운 일을 해보았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림 그리는 일에 꽂혀 날마다 그림을 그렸다. 특히 젠탱글에 푹 빠졌었다. 젠탱글이란 점과 선으로 그리는 그림인데 반복되는 점과 선의 패턴을 그리다 보면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활력이 생기곤 했다. 종일 펜을 들고 패턴을 따라 그렸다. 패턴 북을 만들어 수십 가지의 패턴을 공부하기도 했다. 자격증까지 따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흥미를 잃게 되었다. 나 의 첫 책을 만들기 위해 수고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 아부었던 때부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한번 놓은 그 림을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물감과 캔버스를 사다 놓고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거야, 생각하며 마음 한구 석에 미뤄두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를 너무 못해 창피했다. 학교 선생님, 학부모들과 소통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소통이 되자 진전이 없다. 그 후 다시 시작했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영어 공부를 하기 전에는 벵골어 공부를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의사소통해야 했기 때문에 배운 언어였다. 꽤 열심히 공부했기에 의사소통이 잘 되었지만, 방글라데시를 떠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전에는 바느질을 했다. 입지 않는 옷이나 커튼을 잘라 쿠션을 만들었다. 재봉틀이 없어 손바느질을 했는데, 눈이 침침하고 손가락이 아파 그만두었다.

그전에는 리본을 만들었다. 결혼하기 전 리본공예를 배우러 다니면서 사다 놓은 리본 재료가 남아있었다. 간단한 머리띠를 만들어 선물도 주고 리본 머리핀을 만들어 딸아이 머리에 꽂아 주기도 했다. 결국 재료가 모두 떨어지자 이것도 그만두었다.

수고하며 애쓴 일 중에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이 일도 어느 순간 어떤 핑계 때문에 갑자기 멈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그냥 쓰고 있다. 수고롭게 기억을 되살리고 단어를 고른다. 한 꼭지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문장을 쓴다. 내가 직접 쓰고 만든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온다면 이 모든 수고로움이 분명 자랑스러움으로 바뀔 거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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