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당신. 15
긴 방학 동안 외출도 제대로 못 하고 온종일 집 안에서 노는 아이들은 사이좋게 놀다가도 싸우고, 싸우다가 도 잘 논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까지 일과는 항상 변함이 없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내일도 아마 똑같은 일과가 될 것이다.
어제는 우리의 일과가 조금 삐걱거렸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격리된 것은 아니지만 격리된 듯한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심심해”를 백만 번 말하고 “유튜브 하나 더!” 외치는 아이들과 “이 제 그만, 안돼!”를 외치는 엄마.
급기야 두 녀석이 장난을 치다 싸움이 되었고, 큰 아이가 둘째 아이를 밀고 때리기까지 한 것이다. 둘째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스트레스가 가득했던 나는 매를 들었고, 게임용 휴대폰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척하)고 말았다. 순간 평온했던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밤이 늦은 시간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았던 나는 잠자리 책도 읽어주지 않고 누워버렸다. 아이들은 책을 읽어 달라며 짜증을 부렸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제한한다.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안돼’를 외친다. 외출할 때는 ‘빨리빨리’ 부사를 사용하고 아 이들이 실수하면 ‘한숨’ 부사를 쓴다. 밥을 먹을 때는 ‘골고루’ 부사를 남발하고 두 녀석이 싸울 때는 ‘당장’ 부사를 질러 댄다.
엄마의 눈치를 보다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아이를 ‘예쁜’ 손길로 쓰다듬는다.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허락한다. 홍 군은 아이들의 고유명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그런 형용사 아빠가 일찍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아는 것 같다. 자신들을 잘 꾸며주는 사람은 형용사 같은 아빠라 는 사실을.
그게 억울하진 않다.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형용사와 명사, 부사와 동사가 필요하듯,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형용사 같은 아빠와 부사 같은 엄마와 동사 같은 아이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명사이기도 하고 동사이기도 한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도 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개구쟁이다.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품사이다.
고유명사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마음이 변함없는 사람. 나에게도 그런 친구 가 몇 명 있다. 10년 만에 만났어도 어제 헤어지고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떨고 어색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친구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부정 부사 같은 사람이다.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한 편의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품사가 적절히 사용되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부분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살 수 없고, 싫어도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야 이 사회가 굴러가고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질 테니까.
자연스러운 문장을 위해 조사를 남발하면 안 된다는 글을 읽었다.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다 유난히 조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사를 삭제한 후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쓴 글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몇 개를 다시 넣어보았다. 그제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평소에 말할 때는 내가 어떤 습관을 가지고 말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글을 쓴 후 소리 내어 읽어보니 알 것 같았다. 난 조사를 많이 쓰는 사 람이었다.
당신은 어떤 품사의 사람인가?
영어 공부할 때는 문법을 고민하고 품사를 생각하며 공부하지만, 우리말을 할 때는 문법을 생각하지 않고 말한다. 이처럼 당신의 성품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에서 어떤 품사의 사람으로 살아갈지는 바로 나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은 “지 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라고 했고, "쓰기의 말들’에서 은유 작가님은 “사실과 근거가 탄 탄하면 부사는 빼도 된다. 글쓰기 초보자에게는 부사가 독이다.”라고 말했다.
부사 같은 엄마인 나에게 하는 말 인가?
부사(잔소리)를 좀 줄여야 할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