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도 쓰다 보면 의미가 된다. _발뒤꿈치

글과 당신. 14

by 선량

예전에 난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내 몸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발이야.”

내 발은 유독 날씬하게 생겼다. 235cm에 옆 라인이 날씬해 구두를 신으면 꽤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발가락 길이도 엄지부터 새끼발가락까지 가지런히 작아진다. 휘어진 발가락도 없고 발톱 무좀도 없다. 손이나 얼굴과 는 다르게 고생 한번 안 해본 발처럼 생겼다. 친구들은 그런 내 발을 보며 발 모델을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얼굴이나 몸엔 자신이 없었지만, 발만큼은 자신있 었다. 그렇다고 발을 드러내고 다니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즐겨 신었고, 꼭 양말을 신고 다녔다.

방글라데시를 거쳐 인도에 사는 동안 발이 엉망이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40도가 웃돌고, 1년 중 딱 두 달만 겨울인 나라. 운동화를 신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나라다. 더운 나라에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땀이 엄청나게 난다. 그럼 또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 그래서 샌들을 주로 신고 다녔다. 앞뒤가 트인 샌들을 신고 다니며 양말은 서랍 속에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다.


7년 동안 샌들을 신고 다니는 동안, 발은 엉망이 되었다. 이제는 발이 창피해졌다. 그 이유는 바로 발뒤꿈치 때문이다. 발가락도 여전히 가지런하고, 발 모양도 여전히 날렵했지만 발뒤꿈치만은 아니었다. 세월을 정통으 로 맞아버렸다. 거칠거칠해지고 심지어 갈라지기까지 했다. 각질이 심하게 일어난 내 발을 보고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발에 곰팡이”

보이는 것만 신경 쓰며살다 보니 보이지 않는 발 뒤꿈치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한 번씩 거칠거칠한 돌멩이로 밀어도 보고,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양말을 신고 자보기 도 했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자다가 내 발이 홍 군 발에 닿으면 거칠다며 한마디를 했다. 그 곱던 내 발이 천 덕꾸러기가 돼 버렸다.


약 한 달 전부터 운동화를 다시 꺼내 신었다. 양말도 신었다. 다행히도 날씨가 서늘해 발에 땀이 나진 않았다. 밤마다 코코넛 오일을 듬뿍 바르고 양말을 신고 잤다. 거칠어진 내 발을 곱게 만져주었다.

어……. 그런데 오늘 보니까, 뒤꿈치가 부들부들하다. 각질 제거도 하지 않았는데 만져지지 않는다. 곰팡이 같던 내 뒤꿈치가 깨끗해졌다. 그렇게 노력해도 각질이 사라지지 않았었는데, 발을 감싸주었더니 저질로 사라졌다. 발을 높이 쳐들고 남편에게 발뒤꿈치를 내밀었다. 내 본연의 발 뒤꿈치를 남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 상처를 많이 입은 것 같았다. 그녀는 평소에 사람을 잘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친해지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어 주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이것 저 것 잘 챙겨주고 사기를 당해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긍정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자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을 썼다. 내 눈엔 그게 미움받지 않고 사랑만 받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보였 다.


“왜 그 사람의 마음을 네가 신경 쓰고 그래. 그건 그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의 그릇인 거야. 네가 신경 써야 하는 건 네 마음이야.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아……. 그렇지. 내가 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지?”


친구와 대화하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전, 내 모 습이 떠올렸다.

나 역시 그랬었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며 고민했었다. 그게 착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알 것 같다. 그건 나를 아끼지 않고 감싸주지 못했던 초라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마음만 신경 쓰고 살다가 내 마음에 거칠거칠한 각질이 생겨나고 말았다는 것을.

마음에 곰팡 이가 피어나자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 평범한 일상이 힘들어졌다. 뒤꿈치에 생긴 각질도, 마음에 피어난 불편함도, 칼로 도려내고 돌로 박박 문질러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한순간은 깨끗해질지 몰라도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각질도 불편한 내 마음도 정성스레 크림을 발라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면 발은 다시 예뻐지고, 내 마음은 편해진다.


친구에게 꼰대 같은 말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알았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방이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라는 것을.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때,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말은 바로 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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