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현재 19살, 곧 닥칠 수능을 준비하느라 몹시 힘든 고3 시기.
우리 조카도 고3 중에 한 명이다. 하지만 조카는 어려서부터 공부엔 영 취미가 없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기도 했지만, 그게 어디 엄마만의 탓일까?
공부는 못하지만 심성 하나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조카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축구를 워낙 좋아해 친구들과 맨날 축구를 하면서 우정을 다지는 듯했다.
이런 조카가 남들 다 가는 대학 대신 산업체를 선택했을 때, 주위에선 다들 걱정을 했다.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느냐, 어린 아들의 의견을 너무 존중해주는 거 아니냐, 엄마가 아들 망치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난 어린 나이에 이런 선택을 한 조카와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언니와 형부를 마음껏 응원해 주었다. 대학을 꼭 스무 살에 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량아~ 우리 아들이 내년에 이탈리아 가겠다고 영어학원 등록했다~~ 내년에 꼭 가겠대!
며칠 전 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조카가 내년에 밀라노에 와서 축구 경기장에 꼭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었다.
“네가 오면 이모가 숙식은 해결시켜 줄게.”라고 말했던 게 통했을까? 진작에 영어를 포기했던 아이가 회사 근처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니….
뭔가 동기부여를 해준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해가 바뀌면 마흔세 살이 되는 나는, 요즘 공부하느라 바쁘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영어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두 달째 영어책 원서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날마다 영어 책을 읽오 인증하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반복해서 읽는다. 소리 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목이 아프다. 사실 그 전엔 이렇게 열심히 하지 못했다. 대충 말해도 의사소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충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잘하지 못하면 안 되는 환경이 되니, 더 이상 영어 공부를 미룰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어 공부도 시작했다. 영어가 필수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영어가 안 통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안내와 표지판이 이탈리아어로 되어있고, 마트에 가도 영어가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섞여있다. 가끔 나에게 현지어로 물어보는 사람까지 있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직은 왕초보 이탈리아어를 공부 중에 있지만, 조금씩 알아먹는 말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 역사에 대한 공부와 이탈리아에 대한 공부도 한다. 고등학교 때 배운 세계사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는데, 유럽 역사의 중심부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니 너무 답답했다.
유명한 곳에 가서 멋진 광경을 봐도 “와~~~ 멋있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역사적 지식이 없어 좀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아는 게 없으니 눈에 보이는 딱 그만큼, “와~ 멋있다.” 하고 돌아섰다.
공부의 이유가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 비로소 즐겁게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는다. 내 배경지식을 넓혀주어 무엇을 보더라도 배의 감동을 느낄 수 있게. 그것은 분명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공부의 이유를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빨리 삶이 풍요로워졌을까?
아닐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깨달았을 뿐이다.
산업체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조카는 선배들로부터 예쁨 받으며 다닌다고 한다. 하긴, 어른들의 눈에 비친 열아홉 살 아이는 얼마나 귀여울까?
그 산업체를 다니면 야간대학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조카는 내년에 야간 대학에 가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남들이 다 해서 하는 공부 말고,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
나에게 필요해서 하는 공부는 힘들긴 하겠지만,
분명 즐거울 것이라 믿는다.
조카가 이곳에 방문해 함께 축구를 보러 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문화를 직접 접한 조카가 또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