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전하는, 삶은 여행
“너 혹시, 나한테 특별한 감정 있는 거 아니지? 혹시나 해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아서.”
“어…. 저…. 사실은 누나, 맞아요. 저 누나…. 좋아해요.”
“어…. 근데 어쩌지, 난…. 누구랑 연애할 생각이 없는데. 특히 연하하고는….”
“네, 알겠어요. 그래도 좋은 사이로 지내실 거죠?”
“그래, 그러지 뭐.”
그에게 거절을 한 다음 날, 그의 꿈을 꾸었다.
별로 관심도 없던 녀석의 꿈을 꾸다니…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그가 계속 꿈에 나왔다.
세 번째 꿈에서는 큰 언니가 내 남편을 누군가에게 소개했는데, “여기는 연하야. 두 살 어려.”라고 했다.
꿈에서 깬 후 바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너랑 한번 만나봐야겠다. 주말에 터멜에서 만나자.”
그곳은 네팔이었다.
비 오는 거리를 넋 놓고 걸었다. 지금 걷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현실감이 없다니. 주위 풍경을 눈에 다 담을 수 없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사진에도 모두 담지 못했다.
걷다 보니 익숙한 장소가 나왔다. 몇 주 전 우연히 들렸던 스포르체스코 성이었다.
아! 저 길과 이곳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구나!
그제야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구글 지도 밖으로 튀어나와 뇌리에 박혔다.
후드득 비가 쏟아졌다. 아직 아이들을 픽업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고민하다 스포르체스코 성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성 바로 앞 노점상에서 그윽한 커피 향이 풍겼다. 이끌리듯 다가가 카푸치노 한잔을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노점상 한쪽 끝에 한 아저씨가 군밤을 팔고 있었다. 밀라노에서 군밤이라니!! 괜히 반가워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괜히 사진만 찍는 게 미안해 군밤 한 봉지를 달라고 했다.
“어디에서 왔어요? 필리핀 사람이에요?”
“네? 아니요. 한국사람이에요. 당신은요?”
“전 방글라데시 사람이에요.”
“방글라데시라고요? 어머나, 깨몬아첸!! 저 방글라데시에서 6년 살았어요. 치타공이랑 다카에서 살았어요. 고향이 어디예요?”
“전 쿨나예요. 쿨나 알아요?”
“그럼요, 알죠!! 진짜 반가워요.”
우연히 만난 군밤장수 아저씨와 벵골어와 영어를 섞어 수다를 떨었다.
며칠 전에도 중국인 마트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을 만나 벵골어로 인사를 했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밀라노에서 자꾸만 방글라데시 사람을 만난다.
큰아이가 10개월일 때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영어를 전혀 못했기에 현지 언어인 벵골어를 공부해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네팔어와 벵골어가 비슷했다. 나는 남들보다 좀 더 수월하게 벵골어를 익힐 수 있었다.
벵골어 통역사가 되겠다고 과외를 받고, 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인도로 발령이 났다. 오랜만에 품은 꿈이 물거품이 되면서 벵골어 책도 모두 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수많은 고민과 결정들, 불안했던 일상과 다툼들이 스르르 사라졌다.
밀라노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사람들 때문에
운명론자가 되어버렸다.
우린 여기에 올 운명이었던 거야!!!
우리가 걸어왔던 모든 길이 여기를 향했던 거야!!!
운명이라 믿고 결혼한 그와 여전히 투닥거리며 산다. 이제는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 그를, 더 많이 의지한다.
내가 왜 너랑 결혼했는지 모르겠다고 후회도 하면서. 내가 너를 만나 이 고생이다고 넋두리도 하면서. 10년을 넘게 살고 있다.
밀라노는 운명이었을까?
이제 겨우 한 달째!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좀 더 살아보면 우연인지 필연이지 명확해지겠지.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가 선택한 길이니,
결국 이곳으로 맞닿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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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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