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모든 것이 좋기만 했던 신혼 시절, 그와 함께 잠들고, 아침에 함께 일어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사랑을 하고. 출근하기 전 가벼운 뽀뽀까지! 모든 것이 핑크 빛으로 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결혼이 이런 것이었다면 진작에 할 걸 그랬지!!
그리고 한 달 후.
우리는 대판 싸우고, 나는 집을 나갔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기만 하던 이탈리아! 어딜 가더라도 핸드폰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모두 잘생겨 보였고, 모두 친절해 보였고, 오래된 건물도, 오래된 트램도 감성 가득한 유럽 스타일로 보였다.
밀라노에 입성한 지 딱 한 달 반이 된 지금,
현타가 왔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둘째 아이가 개똥을 밟았다.
아니 이놈의 개들은 왜 길에다 이렇게 똥을 싸는 거야? 왜 똥을 치우지 않은 거야?
아침마다 개똥을 피해 걷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이런 개~~ 똥~~
겨울의 차가운 바람으로 낙엽이 길가에 쌓이고 쌓여있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길은 그야말로 개똥과 낙엽으로 뒤덮여있다.
하….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오래된 집과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잘 보존된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우리나라처럼 몇십 년 되었다고 재건축하는 게 없다. 즉, 모든 집이 엄~~ 청 오래됐다는 말.
숙소에 들어갈 때마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어야 한다. 번호키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 공동 현관 열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옆문 열쇠, 집 열쇠, 지하실 열쇠…. 열쇠를 주렁주렁 들고 다닌다.
지문과 바코드로 모든 걸 해결하는 요즘, 모든 걸 열쇠로 여는 이곳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중세 시대의 건물과 함께 시스템 역시 그 시대에 멈춰 있는 건 아닌지.
이탈리아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노동 허가서가 필요하다. 노동 허가서가 나오면 재한이탈리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하고 대면 면접을 봐야 한다. 너무 많은 이민자와 난민들 때문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온라인 면접과 비대면 비자 신청이 가능한 이 시대에 직접 서류를 작성해서 대사관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하다. 인도에서 온라인으로 비자 신청할 때, 자꾸 에러가 나서 짜증 냈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노동 허가서를 신청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고, 하루하루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 신청을 해야 하는데, 언제 가능할지 아무도 모른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아이들의 학교이다. 안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두 달 늦게 학기를 시작했는데, 또 빠지게 되면.... 어떡하지?? 이러다 유급당하는 거 아니야???
이래저래 우리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무리 미워도 사랑해서 결혼한 마당에 다시 무를 수도 없는 법.
그와 극적으로 화해하진 못했다.
언니 집으로 가버린 나에게 많이 미안해하며 "모시러 올" 줄 알았던 그는 끝내 데리러 오지 않았다.
“초반에 버릇을 잘 잡아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도 내 발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렇지 뭐.... 절대 잡혀 사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연장자로서 배려를 좀 더 할 뿐.... 에잇!!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앞두고 고민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이런 불편한 상황에 적응을 해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우리의 비자가,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겠지?
언제가 되었던 지금을 떠올리면,
“그때가 좋았었지!”
라고 말할 게 분명하니까.
신혼 때가 가장 좋았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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