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억

삶은 여행

by 선량

크리스마스의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던 국민학교 시절. 나는 전라남도에서도 매우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서 살았다. 크리스마스가 뭔지는 몰랐지만, 좋은 날이라는 건 건 어렴풋이 알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꼭 양말을 걸어 놓고 자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말을 누군가가 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매번 25일 아침이 된 후에야 깨달았다. "이번에도 망했구나...."



일 년 내내 벼농사로 바쁘다가 가을 추수가 끝나면 한가한 계절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동지가 가까워지면 다시 바빠졌다. 종이를 만드는 닥나무 작업을 12월에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닥나무 작업은 종이와 지폐의 원재료로, 성인 키만큼 자란 닥나무를 베어다가 커다란 가마솥에서 48시간을 찐 다음,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한번 갈색의 겉 피를 벗겨낸 후 잘 말려야 하는, 중 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동지는 언제나 크리스마스보다 며칠 앞서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구경도 못 해봤지만, 알을 넣은 동지 죽은 실컷 먹으며 자랐다.



몇 년 동안 양말을 머리맡에 놓아둘 시기를 놓친 나와 동생은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4학년, 동생이 2학년 때였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평소에 워낙 착한 아이였던 나였기에 내심 뭐라도 들어있기를 바랐다.

창호지를 두껍게 바른 미닫이문이 바람에 흔들리며 덜컹덜컹 소리를 냈다. 찬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왔지만, 초저녁에 이미 아궁이에 넉넉하게 불을 지펴 놨기에 바닥은 뜨끈했다.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조심히 양말을 만져보았다. 작은 양말 속에 뭔가가 들어있었다. 양말을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동전이 후드득 떨어졌다. 십 원짜리 동전과 백 원짜리 동전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올해 초만 해도 내가 밀라노에서 성탄절을 보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말 사람의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특별한 이벤트를 잘하지 않는 우리는 이번에도 성탄절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아직 집이 없어서 트리를 준비하지 못했고, 노동 허가서가 나오면 한국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아직도 안 나오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그린 패스가 안 나오는 바람에 그것 또한 취소했다. “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진작부터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았는데, 그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동심을 파괴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성탄절이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부모가 선물을 주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자! 아마존에서 사고 싶은 거 골라서 장바구니에 담아 놔!"라고 인심을 썼다.

하필, 아이들이 핸드폰을 만진 후에 홈 버튼이 고장 나 버렸.... ㅡㅡ;;;



모든 유럽 국가들이 그렇겠지만, 이탈리아도 크리스마스를 꽤나 기념하는 편이다. 크리스마스가 로마제국 때 생겼으니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할 것 같다.


성탄절이라고 알려진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전혀 상관이 없다. 예수님이 겨울에 태어나긴 했지만, 정확한 날은 모른다고 한다. 오히려 1월이 더 정확하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고 전 세계가 들썩이는 것일까?


그건 로마 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했지만, 민중들은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태양신의 축제인 "빛의 축제"가 "동지"에 있었다.

동지는 일 년 중에 낮이 가장 짧은 날이고 그다음 날부터 점점 낮이 길어지는데, 그날이 바로 "12월 25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황제가 이 빛의 축제를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날"로 지정했고 그동안 이어져 오던 풍습을 흡수해 새롭게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예수님보다 산타 클로스와 선물에 더 열광하는 날이 되었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그 날 만큼은 따끗한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고 있으니, “너희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날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감사한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새해를 준비하기 위한 날임에 틀림없으니.



중고등부 시절엔 성탄절 이브에 교회에서 날을 새고 집사님들 집을 돌며 새벽 송을 불렀다. 정작 성탄절 당일 예배 때는 너무 피곤해서 잠들어버렸지만.

그런 평범했던 일상들이 너무나도 그리운 요즘이다.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차가운 요즘이지만, 가족들과 따뜻한 성탄절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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