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귀국] 여행 가방만큼의 삶을 메고1

삶은 여행

by 선량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분업”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일의 영역을 적절히 나누어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한국행이 결정되면서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생겼을 때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눈치껏 나누고 분업을 했다.


가장 중요한 귀국 날짜 결정과 항공권 예약은 홍 군 담당이다. 버릴 물건과 남겨둘 물건, 가지고 갈 물건을 나누고 짐을 싸는 일은 내 담당이다. 이 일은 또 한 번 세분화되는데 아이들이 챙겨가야 할 장난감과 책, 잡동사니를 결정하고 한쪽에 쌓아 놓으면 내가 버리거나 짐을 싸는 식이다. 혹여라도 이 세분화 작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귀국 날짜가 결정되면 바로 코로나 검사를 예약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현지어! 홍 군 회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예약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에서 10일 도안 자가격리를 할 장소를 물색하는 일이다. 이때는 고도의 협력이 필요한데, 둘이서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숙소를 찾아본 다음 서로 동의를 얻은 후 예약을 진행한다. 이탈리아 현지 숙소 예약은 홍 군이 담당했다면 한국에서의 숙소 예약은 내 담당이다. 그 이유는 유료는 홍 군이, 한화는 내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해 미리미리 알아보고 숙소를 구해야 하는 나와 다르게 그는 꽤 신중한 성격이다. 뭘 그리 서두르느냐, 천천히 해도 된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얼마나 한숨을 내쉬었던지. 결국 귀국을 이틀 앞두고 숙소를 알아보는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있긴 하지만 금액이 너무 비싸거나, 세탁기가 없거나, 주말 가격이 세 배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게 빨리 알아보자고 했잖아!!”라고 퍼붓고 싶었지만…..

‘이너 피스~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

그가 숙소 하나를 찾아서 카톡으로 보냈다. “투룸, 넓은 테라스, 가족 가능, 자가격리 가능, 세탁기, 냉장고, 조리 가능” 번화가에 있는 주택이었다.

“여기 괜찮네. 예약할게!!”

연남동이 핫플레이스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지내면 어떤 기분일까?

자가격리하느라 밖에 나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 좋을 것 같았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곤했지만 견딜만했다. 미리 작성해둔 서류뭉치를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무슨 말을 해도 잘 통하는 이 기분, 너무 좋았다.

“줄을 이쪽에 스셔야죠. 이거 쓰고 가셔야죠. 저기요? 이쪽이라고요. 사람 진짜 많네….”

인상을 쓰며 일하는 사람들, 뭔가 지쳐 보이는 모습들, 아침이었지만 저녁 같은 풍경들. 좋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서류를 왜 이리 많이 쓰는 거야. 똑같은 걸 왜 계속하라는 거야~~”

어느새 나도 똑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방역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지역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시 방역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두었던 연남동의 숙소로 향했다.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는 가게를 지나 주택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왼쪽 끝에 주소지의 주택이 보였다.

짐을 바리바리 끌고 주택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약한 방은 1층이라고 하기엔 좀은 낮고, 지하라고 하기엔 조금 높은 곳이었다. 입구 앞마당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고, 테이블 세 개와 의자가 있었다. 분명히 넓은 테라스라고 했는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이트에서 봤던 소파와 주방, 침실과 세컨드 방을 둘러보았다. 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이트에서 말한 "투룸, 주방, 소파가 있는 거실, 침대 두 개가 있는 침실"은 진실이었지만, 원룸 같은 투룸을 어떡하지?

순간 뉴스에서 보았던 '복층 원룸' 집이 떠올랐다. 복층이라고 했지만 아슬아슬한 선반 같기도 하고 캣 타워 같기도 했던 복층 원룸...


“인터넷에서 본 거랑 비슷하지만 정말 다른데? 이거 사기 아니야?”

홍 군과 둘이 마주 보았다. 그냥 웃음이 터졌다. 여행 가방만큼의 삶을 사는 우리가 그렇지 뭐.

10일간의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비자 문제로 잠시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당분간 한국에서의 여행자 삶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빨리 밀라노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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