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알고 보니 막내 고모 집이 숙소와 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날 오후 고모가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자가격리 숙소로 오셨다.
‘쌀 반가마니, 우럼마 표 김장김치 한통, 국수 한 박스, 김, 사과, 귤, 우럼마 표 유자차, 생수 2박스, 간편식 국거리, 죽, 직접 만든 누룽지, 아이들 과자와 마이쮸’
“고모, 겨우 10일 지낼 건데 이건 마치 두 달 식량 같아.”
“응, 먹고 남으면 다시 줘~~”
막내 고모가 가져다준 식량을 한 곳에 쌓아두니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전기포트를 찾아 물을 끓였다. 엄마가 만든 유자차를 탔다. 따뜻한 유자차를 한잔 마시니 온몸에 온기가 돌았다. 정말 한국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막내 고모는 울 아부지와 스무 살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울 아부지가 스무 살 일 때 할머니는 막내 고모를 낳았다. 할머니와 울 아부지가 스무 살 차이가 난다. 즉, 힐머니가 마흔 살에 막내 고모를 낳은 것이다. 게다기 고모는 거꾸리였다.
노산에 거꾸리였던 막내 고모는…………
천재였다. 칠 남매 중에 가장 뛰어났다. 고등학생 때는 영어단어를 외운 후 씹어 먹었다고 하는데, 진짜 종이를 씹어서 꿀꺽 삼켰다고 한다.
막내 고모와 내 큰언니는 겨우 5살 차이가 난다. 큰언니와 큰 형부가 5살 차이가 난다. 고로 막내 고모와 내 큰 형부는 동갑이다.
엄마가 처음에 시집을 왔을 때 막내 고모는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모를 키운 건 거의 울 엄마인 샘이다. 그래서일까? 막내 고모와 울 언니 들은 꽤 각별하다. 고모와 조카 사이가 아니라 거의 자매와 비슷하다. 나는 막내 고모와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지만 울 언니들 덕분에 고모의 덕을 보고 있는 중이다.
막내 고모는 다양한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어느 대학교의 교수님으로 일하면서, 어느 NGO 대표로 있으면서, 노약자를 위해 밥퍼 사역도 하시면서, 교회 사모님이시다.
이런 막내 고모를 볼 때마다 나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 자발적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사람 말이다.
고모의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이 고달플 때마다 나는 막내 고모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어 내 길을 묵묵히 걷는다.
좁은 숙소에서 먹고 자는 건 문제가 아닌데, 온종일 웅크리고 있자니 속이 영 답답해서 못쓰겠다. 다행히도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테라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작긴 하지만 이런 게 있는 게 어딘가?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바깥공기를 좀 마셔볼까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아~악 추워!!”
밀라노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뜨끈한 바닥에 드러누워 귤을 까먹었다.
매번 밥과 김치만 먹고살 수는 없는 법.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배달을 시켜 먹는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떡볶이와 순대, 치킨,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돈이 술술 나간다.
문득, 우리가 집 없이 산지 거의 6개월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 없는 삶이 왜 이리 괜찮은 건지……
좀 이상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러다 집이 생기면 어색해질 것 같다.
비자 문제로 한국에 갑자기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가격리를 잘 마치고 퇴소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인도를 떠난 지 7개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행 가방을 들고 살고 있습니다.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인데, 저희는 의도치 않게 코로나 시대에 여행자처럼 살고 있습니다.
다시 밀라노로 가게 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