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단상

삶은 여행

by 선량

“고모 집은 어디예요?”

“고모는 집이 없어.”

“차 타고 가면 되잖아요.”

“차도 없어…”

“그래요?”

“응, 차도 없고 집도 없고.. 거지인가??”

“그럼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잘 살고 있는데?”

“그래요??”

“응, 소은이 언니랑 노는 거 좋지? 집이 없어서 놀 수 있는 거야.”

“아~”


지금까지 참 많은 집에서 살았다.


날 때부터 살았던 고향 집, 광주에 올라가서 언니들과 살았던 방 두 칸짜리 상가 건물의 3층 집, 처음으로 살아본 방 세 개짜리 아파트, 둘째 고모와 함께 살았던 방 네 개짜리 엄청나게 넓었던 집, 전세가 아닌 엄마 명의의 아파트였던 2층 집, 병원 생활을 하며 살았던 5평 남짓의 작은 기숙사, 네팔에서 혼자 살았던 방 하나 거실 하나의 작은 집, 동생과 함께 살았던 이대 반지하 집, 셋째 언니네 집, 둘째 언니네 집, 결혼 후 신혼을 보냈던 안산 작은 빌라의 방 두 개 4층 집, 방글라데시에 처음 가서 살았던 바퀴벌레가 너무 많았던 집, 이사해서 살았던 바로 앞에 사슴 농장이 있었던 집, 다카로 이사 후 살았던 주택가의 4층 집, 또 한 번 이사하고 살았던 7층 집, 뭄바이로 이사 후 살았던 바다가 보이던 5층 집, 델리로 이사하고 살았던 4층 집.



어마어마하게 많은 집에서 사는 동안 얻은 것은 어느 곳에서나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이다.

집의 크기나 층수에 상관없이 내 살림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내 집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네팔에서 혼자 살았던 작은 집이다. 밥그릇 두 개, 국그릇 두 개, 숟가락, 젓가락, 밥통 하나만 겨우 갖추고 살았던 곳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불렀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가 자주 놀러 왔기 때문에 좋았던 건 절대 아니다.


집이라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정서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럭셔리한 집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살았던 7층 집이다. 벽은 대리석이었고, 신축 건물이라 깨끗했으며 거실과 주방 공간도 넉넉하고 좋았다.

하지만 8층에 살고 있던 집주인은 지랄 같았다. 돈 많은 집주인은 영국 시민권자였지만, 하는 짓은 졸부였다. 우리 가족이 갑자기 인도로 가게 되어 이사를 나갈 때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 갖은 머리를 쓰더니, 결국 부도 수표를 주었다.

역시 좋은 집보다는 좋은 이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가장 힘들었던 집은 뭄바이에서 살았던 5층 집이다. 그곳은 외국인들이 전혀 살지 않는 아파트로 방 2칸짜리의 작은 아파트였다.

창문을 통해 아라비안 해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매일 저녁 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창문으로 비가 새어 들어왔다. 침대와 이불을 적시고 흘러 들어와 거실까지 물이 차올랐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을 퍼 대느라 지쳤다.

역시 집은 사계절을 지내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뭄바이 집에서 바라본 석양



집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와 지내는 숙소가, 이모집이, 삼촌 집이, 할머니 집이, 그냥 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집이란 가족이 머무는 곳인가 보다.



다시 한번 새로운 집을 기대한다.

비자를 받고 밀라노에 가면 우리 네 가족이 적당히 지낼 수 있는 집을 구할 것이다.

적당한 크기의 집, 적당히 햇살이 들어오는 집, 적당히 시야가 트인 집이면 좋겠다. 테라스도 있어서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적당히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학교와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늦잠을 자더라도 지각하지 않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아이들 친구들이 놀러 와 즐겁게 놀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월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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