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우리는 지금 강남 한복판, 작은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시골 친정 집에서 2 주, 작은 언니 집에서 2주, 동생네 집에서 2주를 보낸 뒤 둘째 언니 집으로 옮겼었다.
언니 집에서 보낸 지 딱 삼일 째 되는 날, 형부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그 전날 아이들이 이모부 곁에 딱 붙어 과자를 먹고, 장난을 쳤었는데…. 어쩌나….
안 그래도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 코로나에 걸리면 비행기를 못 타게 될 테니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었는데,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고민 끝에 숙소를 구해 우리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숙소로 이사한 후 이틀 뒤, 언니와 조카들이 줄줄이 확진되었다. 나와 아이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을 졸였다.
뉴델리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심해졌을 때도 안 걸리고 버텼는데, 밀라노에서 오미크론이 심해졌을 때도 안 걸렸는데, 여기 서울에서 걸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목이 아픈 건 아닌지, 열이 나는 건 아닌지 매일매일 체크했지만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도 확진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비자가 나오면 바로 떠날 수 있게 만반의 준비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일이다. 다른 거 다 준비해도 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비행기를 못 타게 될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강남 한복판인 가로수길에서 지내지만 외식도 쇼핑도 거의 하지 않는다.
나가더라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 평일 낮에 나갔다가 얼른 들어오는 식이다. 이건 뭐 강남 냄새만 맡고 가는 겪이랄까…
또 한 가지, 짐을 늘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 온 게 1월이었으니, 죄다 겨울 옷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봄이 되었다. 두꺼운 겨울 옷을 박스에 담아 시골집으로 보냈다. 그 옷들을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겨울 옷을 드러낸 만큼 캐리어에 여유가 생겼다. 거기에 읽고 싶었던 책을 담았다. 하필 가로수길 입구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딱! 있어서 참새처럼 드나들었다. 책을 사서 읽고 팔고, 다시 사서 읽고 팔고…. 그중엔 되팔기 싫은 책들이 꽤 있었는데, 어느새 캐리어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가면 아이들이 바로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8시간의 시차가 문제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오후 4시인데, 한국 시간으로 치자면 새벽 0시….
이를 어쩌나….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벌써부터 이탈리아 시차를 따르는 것인지, 12시가 넘어서 자고 오전 11시가 되어 일어난다.
그래서 곧 비자가 나오는지 궁금하시죠?
곧 나올 거란 말을 들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니까 한 달 내내 우리는 이탈리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났고, 유럽 전체가 들썩이고 있으며, 러시아의 핵 도발에 준비를 한다는 말도 들리고,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생필품 사재기를 하고 있다나….
과연 우리는 갈 수 있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한국의 봄이나 잔뜩 즐기고 가야겠다.
그 와중에 나는,
쓰담쓰담 글쓰기와 새벽 영어 원서 읽기 모임과 공동저서 책쓰기를 하고 있다.
다음 달엔 월든으로 슬로우리딩도 할 참이다.
정신력이 강해진 것일까?
더이상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고,
이런 삶이 일상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