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약 20시간 만에 밀라노에 도착했다. 무비자 체류기간 90일 중 이미 80일을 써버렸기 때문에 혹시나 입국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되었다. 남편은 한국에서 비자를 받았지만, 나와 아이들은 이탈리아에 입국한 후에 가족 비자를 신청할 예정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류를 철저히 준비했다.
이탈리아는 얼마 전부터 코로나 방역 대책이 많이 완화되었다. 3차까지 백신을 맞은 우리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백신을 맞지 않은 두 아이들은 음성 확인서를 준비했다. 입국 관련 서류와 코로나 관련 서류까지 합하니 꽤 묵직해졌다.
준비한 것과 무색하게 입국심사는 간단하게 끝났다. 여권에 찍힌 스탬프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밀라노에 다시 왔구나....
익숙하게 짐을 찾고 익숙하게 택시를 탔다. 익숙하게 숙소로 들어와 익숙하게 짐을 풀었다. 새로운 숙소엔 없는 게 많았다. 밥통도, 커피포트도, 도마도, 세탁기도 없었다. 숟가락은 딱 4개, 칼은 잘 안 들고, 냉장고는 너무 작았다. 일단 필요한 물건을 사고, 먹을 걸 사야 했다.
익숙하게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토요일마다 서는 장터에 갔다.
"얼마예요?"
"10유로예요."
계속 이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야채를 샀다. 3개월 동안의 공백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2주 동안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여행하고 있는 곳이 이곳인지 저곳인지 헷갈렸다.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꽃가게를 발견했다.
"나 꽃 사줘.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줘."
"......."
"십일 주년 결혼기념일인데 꽃으로 퉁치는 게 진짜 고맙지? 다이아몬드 말 안 한 게 어디냐~"
"알았어, 알았어. 골라봐."
인상 좋게 생긴 꽃집 할아버지가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뛰어왔다. 꽃집 주인이 할아버지라니.... 정말 밀라노 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튤립 얼마예요?"
"10유로예요."
"한 송이예요?"
"허허허 아니죠, 아니죠. 한 다발에 10유로예요. 한 다발에 10송이예요."
"와~ 좋네요. 이거 주세요."
노란 튤립 열 송이를 손에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꽃병 대신 생수병을 잘라 꽃을 꽂아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샛노란 꽃을 보고 있으니 한국을 떠나 밀라노로 오는 동안 찌들었던 피곤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봄이 왔다.
며칠 뒤 다시 한번 꽃집을 지나갔다. 따뜻한 봄 햇살 덕분인지 꽃들이 더욱 만개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꽃가게 점원이 다가왔다. 꽃집 할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꽃 사실래요?'
"음... 어... 저... 주황색 튤립 한 다발 얼마예요?"
"10유로입니다."
"네. 저거 주세요."
꽃을 포장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꽤 익숙했다.
"혹시, 방글라데시에서 왔나요?"
"네. 맞아요. 당신은 일본?"
"난, 한국사람이에요. 반가워요. 저도 방글라데시에서 6년 살았어요."
"와~ 그래요? 제 고향은 다카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에요."
"전 다카에서 살았어요. 진짜 반가워요."
꽃을 건네주는 꽃집 아저씨에게 10유로를 건넸다.
"그라찌에!"라고 말하는 아저씨에게 "던여밧"으로 화답했다.
"여기서 방글라데시를 아는 사람을 만나니 너무 좋네요. 고마워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방글라데시에서 그들의 삶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이민자의 고달픈 삶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꽃이 시들면 안개꽃을 사야겠다. 그다음엔 작약 꽃을, 그다음엔 장미를 사야지.
집을 구하면 제라늄과 팬지 화분을 사서 창가에 놓아야겠다.
이미 내 마음은 이 꽃가게의 단골이 되어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생수병을 하나 더 잘라 주황색 튤립 한 다발을 꽂았다. 활짝 핀 노란색 튤립 옆에 이제 막 봉우리를 틔운 주황색 튤립 한 다발을 놓았다.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