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
"쏘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 난 뭐든지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어. 알겠지?"
그녀는 매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먼저 연락을 해주었고, 프랑스어 숙제가 힘들 때마다 영상 통화를 하며 직접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그녀는 내 딸의 절친, 발렌티나의 엄마, 막달라( Majdala)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막달라는 언제나 바쁘다. 늦둥이가 이제 겨우 17개월인데, 남편은 너무 바빠 주중엔 집안일을 도와주지 못한다고 한다.
언제나 화장기 하나 없는 부스스한 얼굴로 유모차를 끌고 학교 앞에 나타나 다다다 다다~ 말을 쏟아낸다. 육아 맘의 분주함은 어느 나라나 같은 모양이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이탈리아도 심지어 포르투갈어와 아랍어까지 하는 그녀가 너무 대단해 보인다. 경혼 전엔 분명 정말 멋진 커리어우먼이지 않았을까?
팔레스타인 지역과 가까운 레바논에서 태어난 그녀의 고향은 예수님의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막달라는 그 지역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에서 태어난 ‘최전주’ 즈음되려나….
그녀의 가족은 8살 때 프랑스로 이주했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거의 프랑스 사람과 다름없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녀를 이방인 취급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내가 레바논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그게 너무 기분 나빴어. 프랑스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너무 많아."
내가 동양인으로서 느꼈던 차별을 그녀 역시 느낀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녀와 나는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레바논으로 돌아갔어.
엄마를 보러 방학 때 레바논에 갔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난 거야. 우리 집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가면서 두~ 두~ 두~ 총알이 쏟아졌어. 창문 밖으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게 보였지. 너무너무 무서웠어."
"난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했지. 엄마는 고향에 남겠다고 했고 말이야. 40일이 넘게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초콜릿이랑 참치 캔만 먹고살았어. 그때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몰라. 제발 살려 달라고....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드디어 전쟁이 멈추었을 때 첫 비행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왔어. 엄마만 놔두고...."
그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거 알아? 나는 사람들이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돼. 살아 있잖아. 여기엔 전쟁이 없잖아.
여기가 천국인 걸 사람들은 몰라."
“엄마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었어. 우리 막내도 못 봤지. 내 남편의 어머니는 전쟁 중에 돌아가셨는데 가보지도 못했어….”
멋진 과거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 반대의 과거를 고백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깊은 사념에 잠겼다.
전쟁은 누가 일으키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가?
전쟁 앞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게 과연 있는가?
지금도 매일 전쟁의 소식을 듣는다.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을 숨길 길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어서 그 전쟁이 끝나기를,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그동안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고, 힘들다고 넋두리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게 부끄러운 사치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고, 자유를 누리며,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매일매일 이것을 되새기며 살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