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드디어 밀라노에서 집을 구했다.

삶은 여행

by 선량

매주 수요일엔 교회에 간다. '마더 와이즈'라는 성경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교회까지 가려면 지하철과 트램을 타야 하고, 거의 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평일에 가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신청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이들이 오전 수업만 하는, 일주일 중에 가장 바쁜 수요일이다.

성경공부를 신청해 놓고 후회를 조금 하기도 했지만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꽤 컸던 모양이다.

나는 수요일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곧바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5주 전, 그러니까 마더 와이즈 성경 공부 모임에 처음 참여했을 때,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었다. 그때 나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밀라노에 다시 온 지 한 달이 되도록 집을 구하기는커녕, 마땅한 동네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밀라노 시내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르기도 했을뿐더러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하려다 보니, 쉽사리 빈집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집 방문 약속을 잡는 것도 꽤나 어려웠다. 겨우 약속을 잡고 방문해도 집이 너무 작거나, 사이트에 올라온 것과 다르게 방이 하나 거나, 너무 어두웠다. 마음에 드는 집은 약속을 잡기도 전에 나가버렸고,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던 집은 10월에 입주가 가능하다고 했다.


집을 구하지 못해도 지금 지내고 있는 레지던스에서 대충 잘 지내고 있었기에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도 했다. 뭐, 언젠가는 집이 생기겠지, 설마 길에 나 앉을까.


2주 전, 수요일 아침이었다. 함께 성경 공부에 참여하고 있는 자매 한 명이 나를 보며 말했다.


"집사님~ 제가 어제 그냥 한번 다음 카페 앱을 다운로드해서 들어가 봤어요. 밀라노 한인 카페 아세요? 근데 거기에 진짜 괜찮은 집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집사님 보여드릴고 캡처해왔어요. 학교랑도 가깝고, 진짜 딱이에요. 집주인도 한국 사람이래요."


그 자매는 밀라노에 산 지 7년 정도 된 성악 전공 유학생이었다.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오다가다 인사만 나누는 사이었을 텐데, 함께 모임을 하며 꽤나 가까워졌다.


"어머, 정말요? 그런 카페가 있어요? 전혀 몰랐어요."


나는 자매로부터 집에 대한 정보를 받은 후 남편에게 즉시 보냈다. 그리고 남편은 집주인에게 바로 연락해 다음 날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집의 위치는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 근처였으며 바지오 동굴 공원 바로 옆이었다. 공원을 워낙 좋아하는 남편에게 딱이었다. 시내와 다르게 아파트 단지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학교까지 걸어가긴 힘들지만,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집주인이 한국 사람이라서 냉장고와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이 잘 구비되어 있었고, 월세도 회사 지원 범위에 딱 맞았다.


우리가 집을 둘러보고 있을 때 중국 사람 3명이 들어왔다. 그들도 집을 둘러보더니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자기야, 빨리 전화해. 이러다 놓치겠다. 우리 여기로 하자!"



하지만 그 집은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보다 먼저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과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 여기도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다니.... 우리 집이 되면 정말 사랑해 줄 텐데....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인연이 아닌 집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남편과 나는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또 다른 괜찮은 집이 있는지 찾아 나섰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그 집에 대한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그 집이 우리 집이 될 거라고 확신해. 기다려 봐. 그 집은 우리 집이 될 거야."


아침에 잠에서 깨어 멍하니 꿈을 회상했다. 얼마나 그 집에 미련이 남았으면, 그런 꿈까지 꾸었을까....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어렸을 적부터 꿈을 너무 많이 꾸어서 꿈에 대한 책을 사서 읽을 정도였다. 성경 인물 중에 '꿈쟁이 요셉'에게 심취했던 적도 있었다. 남편과 교제를 시작했을 때도 그에 대한 꿈을 세 번이나 내리 꾼 후 한번 만나보자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꿈은 개꿈이다. 이미 내 것이 아닌 것에 미련을 갖지 말자. 다른 더 좋은 집이 있을 것이다....



일요일 오전, 교회 계단에서 그 자매를 만났다.

"집사님~ 집 어떻게 되었어요?"

"아, 집은 너무 좋은데 다른 사람이랑 이미 계약하기로 했대요."

"헐..... 너무 아쉬워요."

"그러게요. 괜찮아요. 다른 집이 있겠죠."

그 자매는 우리보다 더 실망한 눈치였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월요일 오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왜?"

"자기야, 집 계약하자네."

"뭐라고? 그 집?"

"응, 그 집. 우리랑 계약하자고 연락 왔어."

"왜? 어떻게? 다른 사람 있다며?"

"몰라, 자세한 건 안 물어봤어. 6월 말에 입주 가능하데."


눈물이 났다. 애써 괜찮다고 억눌렀던 마음이 한 번에 터져버렸다.

드디어 집을 구했다.

인도를 떠난 후 거의 1년 만이다.



이 글은 제 개인 매거진 쭘마인밀란 22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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