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는 작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장. 어느 날 작가가 되었습니다.

by 선량

첫 책이 출간되기 전, 잠시 한국에 휴가를 갔다가 출판사를 방문했다. 이메일로만 인사하던 분들과 직접 이야기하고, 책에 대해 논의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친김에 프로필 사진 촬영과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며칠 뒤에 뉴델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다음엔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북토크는 꿈도 꿀 수 없고, 서점 매대에 놓여있는 내 책을 볼 수도 없으며 출간된 책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한국에 사는 지인의 도움으로 서점에 놓인 내 책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책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도 출간된 지 한참 지난 후였다.

해외에 살며 작가로 사는 건 여러모로 제약이 많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나는 가끔 한국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면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좀 더 잘 나가는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홍보를 좀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정념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만약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작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처럼 해외에 사는 주부들의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외로워서!'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반복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한국이었다면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다른 가족들을 만나 흉이라도 볼 텐데. 해외에 살면 그게 잘 안된다. 오롯이 내 몫이 되고 만다. (지난 일주일 내내 만난 사람이라곤 집 근처에 사는 베트남 친구 한 명뿐이었다.) 한국 사람들과 좀 더 활발하게 교류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잘 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해외에 살면 사람이 폐쇄적으로 변한다.

이럴 때 글쓰기는 큰 위로가 되어준다.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글로 쓰고, 해외에서 경험한 억울한 일을 글로 쓰고, 한국 말을 결코 알리 없는 외국 친구들에 대해 글로 쓴다. 내 가족들에게 말했다면 염려했을 일들을 글로 쓰기도 한다. 그렇게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겉으로 보기엔 찬란해 보이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갈등과 문제가 있다는 것은 책의 좋은 소제가 될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탈코리아를 꿈꾸며 이국의 삶을 동경 어린 눈으로 보기 때문인데, 그런 환상을 더 하거나 깰 수 있는 데는 책만 한 게 없다.

하지만 이민자의 에세이보다 여행 에세이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한국의 삶도 고달픈데 이국에서의 우울한 삶을 드려다 보기 싫기 때문이거나, 해외의 삶에 대한 환상을 깨기 싫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 중에 만나는 어려움은 하나의 교훈이 된다.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한다. 여행 에세이가 인기 있는 이유는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곳이 있는 일상이 있기 때문이리라.



주로 해외 생활에 대해 글을 쓰는 나는 매번 한계를 느꼈다. 과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나의 삶을 이해해 줄지, 내 글에 공감을 해줄지 의심하며 글을 썼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은 방글라데시였다. 방글라데시의 삶과 벵골어, 책 육아에 대한 정보성 글을 주로 썼다.

브런치 작가가 된 곳은 인도 뭄바이였다. 인도의 이색적인 모습을 많이 썼다. 블로그를 넘어 브런치로 글의 반경이 조금 넓어지면서 에세이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의 주제도 좀 더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쓰고 투고를 하고 계약을 한 곳도 바로 뭄바이였다.

책이 출간되어 작가가 된 곳은 뉴델리로 이사한 후였다. 그곳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책을 만들었고, 출판 강의를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동저서 계약을 하고 출간을 준비 중이며 다양한 글쓰기 모임의 리더로, 슬로우리딩 북클럽의 클럽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량한 글방'이라는 온라인 글방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작가가 되기 전 글쓰기 모임이나 책 쓰기 모임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온라인 모임이 활발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글쓰기 모임은 대부분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그렇다 보니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집하고 운영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글을 계속 혼자 쓰다 보니, 함께 쓰는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모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나만의 색깔을 가진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다행히도 코로나 이후 온라인 모임이 많이 활성화되었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나는 나처럼 해외에 사는 사람이나 내성적인 사람들과 함께 메시지와 sns 만으로 충분히 모임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 마음이 통했던 것 같다. 회원을 모집할 때마다 매번 정원초과가 되어 조기마감을 하고 있다. 무엇을 믿고 그렇게 신청을 해주시는 걸까?


얼마 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외에서 해외로 이사를 하시면서도 계속 모임을 하고 계셨다니, 정말 존경스러워요. 글도 계속 쓰시고, 모임도 계속하시고 한결같은 모습에 다시 신청하게 되었어요."


해외에 살면 장소와 시차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 별로 게의 치 않는 것 같다. 그걸 느끼는 사람은 해외에서 글을 쓰는 바로 나였다.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한결같은 모습으로 글을 쓰고 모임을 만들면, 독자들은 알아봐 주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특강을 할 수도, 독자들을 모아놓고 북 토크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이끄는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눠주고, 꾸준히 소통하다 보면

독자들을 넓게 만날 수는 없지만, 소수의 독자들과 깊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오프라인으로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며 선량한 글방을 운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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