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키클롭스 같은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by 선량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의 섬에 당도한 오디세우스는 가장 용감한 부하 12명을 뽑아 거인의 동굴로 갔다.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가 자신을 환영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다. 부하들을 잡아먹고 나머지 사람들은 동굴에 가두어 버렸다. 오디세우스는 고민하다 키클롭스에게 향긋한 포도주를 따라주며 그를 취하게 만든 후 이렇게 말했다.

“키클롭스여, 내 이름은 낫씽(Nothing)입니다.

키클롭스가 고이 잠들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그의 눈을 찔러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키클롭스가 애지중지 키우던 양들을 세 마리씩 묶었다. 그리고 가운데 양에 동료를 매달리게 한 후 동굴을 빠져나간다.

겨우 키클롭스의 섬에서 빠져나온 오디세우스 일행은 서둘러 뱃머리를 바다로 돌린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키클롭스여, 죽을 운명인 인간들 중에서 누가 그대의 눈을 멀게 했는지 묻거든 이타케에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멸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해라!”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임명현 옮김, 돋을새김]
Arnold_Böcklin_Odysseus_and_Polyphemus_1896_150x66_MFA_Boston.jpg 아르놀트 뵈클린, Odysseus and Polyphemus, 오딧세우스와 폴리페모스, 1896, 유화, 150x66cm



자신의 지혜로 힘겨운 상황을 모면하고 목숨을 건지게 된 자의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면 교만이었을까? 언제나 자만심은 일을 그르치고 만다. 어리석은 언행으로 오디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키클롭스가 바로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이 일로 10년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갖은 고초를 당하며 바다를 떠돌게 되었다.



힘든 상황은 마치 눈이 하나 있는 커다란 거인, 키클롭스 같다. 우리를 어두운 동굴 구석으로 몰아넣고 위협한다.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I’m nothing)”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이것은 겸손이다. 마지막 남은 용기를 끌어 모아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는 희망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거인처럼 나를 위협하는 상황을 향해 작은 몸부림을 쳐본다. 부디, 오디세우스처럼 자만하지 않기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남편 대신 강해져야 했다. 인도로 올 때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직접 선택해보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선택이었지만, 그 상황에 몸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선택의 결과를 한번 목도해 보리라.

밀라노 행을 결정하자마자 파도에 휩쓸리듯이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홍 군이 새로운 회사와 면접을 본 후 바로 합격을 했다. 불안장애가 심한 상태에서도 면접을 봤다는 게 기특하기만 하다. 기존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아이들의 학교에도 소식을 알렸다. 밀라노에 있는 학교를 찾아 입학 상담을 했다. 입학 서류를 준비하고 입학금을 보냈다. 집주인에게 두 달 후에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알렸다. 보증금을 받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고, 고장 난 곳을 손보았다. 겨우 2년 살았던 집이었지만, 정이 많이 든 곳이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애들아, 밀라노 가는 게 맞을까? 그냥 한국에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같은 질문을 해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한국은 좋지만, 한국 학교에 다니는 건 싫어.”

해외에서 계속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한국 학교와 학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교육 환경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키클롭스였을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의 대답에도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상황을 반전시키지도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데로, 상황이 흘러가는 데로 자신을 맡길 뿐이었다.



그와 다르게 나는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저희 밀라노로 가게 되었어요.”

나는 숨기지 않고 떠벌렸다. 마치 인도를 떠나 밀라노로 가게 된 것은 큰 행운인 것처럼, 서남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게 된 것이 큰 축복이나 된 것처럼. 나는 큰소리로 떠들고 다녔다.

“밀라노 정말 좋던데, 너무 부러워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우쭐해졌다.

“나중에 밀라노로 놀러 오세요~”

내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그게 오디세우스의 어리석은 외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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