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첫 번째 공간 : 키르케의 궁전 같은 곳

2. 기나긴 여정의 서막

by 선량
“키르케의 궁전에는 네 명의 시녀들이 부지런히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청동 세발솥에 물을 끓여 적당한 온도로 맞춘 뒤 내 머리와 어깨에 물을 붓고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온몸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도록 말이지요. 또한 내 앞에 반짝이는 식탁을 놓고 빵과 음식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돋을새김]



7시간 여의 비행시간 동안 기내에 있던 사람들 모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방호복을 입고 왔다 갔다 했다. 우리는 겨우 물만 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도 밤 비행기였기에 다들 불평 없이 잠을 잤다.

그와 나는 잠들지 못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에 수면제를 먹은 그는 탑승직후 조금 자더니 그후 계속 깨어있었다. 나는 잠들지 못하는 그가 염려되어 잠들지 못했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무사히 왔다는 생각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몇 주 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염려는 결국 허상이었다는 걸 그도 나도 알게 되었다. 비행기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는 인도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방역을 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격리된 노선을 따라 검사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기다리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드디어 준비된 격리 버스를 타고 격리 시설로 이동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로 룸으로 들어섰다.

“객실 밖으로 나가시면 절대 안됩니다. 아침, 점심, 저녁은 출입문 옆 지정된 장소에 배치됩니다. 방송이 나올 때만 출입문을 열고 도시락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다 먹은 후에는 폐기물 쓰레기 봉투에 담아주세요. 만약 룸 밖으로 나가실 경우에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할 수 있습니다.”



격리 시설은 김포에 있는 모 호텔이었다. 호텔 발코니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아라뱃길이 보였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태였지만, 전망 좋은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싫지 않았다. 심지어 욕조도 있어서 마음껏 스파를 즐겼다. 인도에서 3년 동안 묵은 때를 시원하게 벗길 수 있었다. 게다가 삼시세끼 밥까지 챙겨주다니….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키르케의 궁전이 되려 오디세우스와 그의 동료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돌봐 주는 곳이 된 것 처럼. 격리 호텔은 그야말로 휴양지였다.



인도를 떠나기 전 그는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극도로 불안해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한시 간 동안 진행되는 상담이었는데 상담 첫 시간부터 그는 많이 울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것들이 눈물로 터져 나왔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겪었을 정서적 불안정과 성인이 될 때까지 느껴보지 못했을 안정감. 해외에서 회사에 다니며 느꼈던 수치심과 좌절, 죄책감이 그를 여러 모양으로 옭아매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도 나도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적당하게 숨기며 살았다. 힘든 점을 말하기 시작하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서로를 찌를 것 같았다. 우리는 그걸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려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 분과 함께 상담을 진행해 보고 싶어요. 특수한 환경에서 지냈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의존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적인 의존도가 높지만, 서로 배려하느라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내 분을 상담에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어요. 원래 부부 상담은 따로 하지만, 같이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상담사의 권유에 따라 그의 상담에 참여하기로 했다. 내가 참여하는 것이 그의 불안을 거둬들이는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상담가의 권유를 무시하면 안 되기에 그를 위해 기꺼이 참여했다.



“아내는 정말 단순한 사람이에요. 복잡한 생각을 잘 안 하죠. 그래서 언젠부턴가 아내에게 제 상태를 잘 말하지 않게 되었어요. 괜히 말했다가 아내까지 힘들어 질 것 같았거든요.”

“저도 남편이 힘들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지 못해요. 남편을 모두 보듬어 주고 싶지만, 제가 버거울 때는 받아주지 못하겠어요.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제가 다 해야하고, 남편까지…. 정말 너무 벅찼습니다. 저는 아내이고 싶지 엄마이고 싶지 않거든요.”

그의 말과 내 말을 번갈아 들은 상담가는 심각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두 분 모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걸 말하고 있네요. 그리고 아주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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