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멀어지면 정말 마음에서도 멀어질까?
이 말을 믿지 않던 때가 있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만 확고하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런 일반화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장담. 우리는 특별하다는 자신. 우리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완신.
10년 동안 생사도 알지 못하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구혼자들의 온갖 행패에도 정절을 지키며 오디세우스를 기다린 페넬로페처럼. 나는 공간의 거리가 절대 마음의 거리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교회 동생이었던 그와 교제를 시작한지 딱 한달 뒤,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다들 우리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네팔이라는 낭만이 깃든 곳에서 청춘남녀들의 치기어린 애정행각으로 비쳤으리라….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위해 복학을 했고, 나는 아직 남은 네팔에서의 봉사활동 기간을 채워야 했다. 한참 불타오르는 연애기간에 서로 떨어져 지내다 보니, 애틋함과 그리움은 점점 더해갔다. 밤마다 네이트온으로 채팅을 했고,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했다.
“누나, 여기 아침 됐다….”
화상통화를 하다 날을 꼴딱 새우기도 했다. 우리는 8개월을 떨어져 지냈지만, 마음은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그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런데 다시 만난지 한달 만에 그가 인도로 떠나버렸다. 인도에 있는 회사로 취직을 한 것이었다…..
다시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서로의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다. 통화도 자주 할 수 없었고, 영상통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어쩌다 통화가 되어도 오래하지 못했다. 그와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나 이제 좀 많이 힘들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나 지금 서른이야…. 너와의 미래가 잘 상상되지 않아. 좀 지치네. 더 늦어진다면…. 내가 더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
결국 그에게 숨겨두었던 진심을 말했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와 결혼 후 일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우리는 신혼이었고, 첫 아이는 백일이었다. 안산의 17평 4층 빌라에는 몇 개 되지 않는 신혼 살림이 그대로 있었다. 그가 떠난 집에서 혼자서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언니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8개월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결혼해서 함께 산 세월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더 길었다. 아이는 아빠를 보고 낯설어하며 울었다.
둘째 아이를 낳으러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회사를 이직하면서 잠시 교육을 받아야 했을 때도,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법인을 옮길 때도 우리는 매번 떨어져서 지냈다. 길게는 7개월, 짧게는 한 달씩 떨어졌다 다시 붙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우리는 다시 떨어져야 했다. 새로 이직한 회사는 부산에 있었고, 나는 서울에 있는 언니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까?
결혼 10년차가 되니, 이젠 좀 떨어져 사는 것도 괜찮다. 오히려 주말부부가 부럽다고나 할까. 매일 전화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영상통화는 아이들 하고만. 사랑 같은 입에 발린 말은 절대 금물. 대신 너무 잘 지내는 티는 내지 말기.
“만약에 내가 자기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면 딱 2년의 애도기간을 갖도록 해. 그리고 다른 여자 만나도록 해. 2년은 지켜줘.”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 자기도 다른 남자 만날 거야?”
“미쳤어? 뭔 고생을 하려고 남자를 또 만나? 그냥 혼자 편하게 살거야~~”
나는 결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