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투룸 같은 원룸에서 살게 된 우리의 모습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남들의 눈엔 우리 가족이 어떻게 비칠까?
남들의 눈까지 신경 쓰기엔 내 삶이 너무나 분주하게 돌아갔다. 나는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대한 판단을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불행의 요소들이 즐비한 경우가 많다. 불행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까?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별 것 아닌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불안장애로 힘든 홍 군,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집이 아닌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는 동안 나는 가족의 무게를 무겁게 느꼈다. 하지만 그 부피는 별 것 아니라고 간주하기로 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사회적 의미의 가족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이다. 가족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국가를 이룬다. 우리 몸의 세포가 변형되거나 건강하지 않을 때 암으로 진행되듯이, 가족이 해체되거나 건강하지 않을 때 사회는 병들고 만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든든하기도 하지만, 가장 위협적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학대와 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가정폭력 사례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물보다 진한 관계.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라는 말은 너무 식상하다. 요즘은 다양한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고, 또 다양한 이유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한다. 혈연으로 엮이지 않아도 충분한 가족, 꼭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어도 되는 가족, 또는 남과 남, 여와 여가 이루는 가족의 형태는 가족의 의미를 좀 더 넓게 만든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지….”
홍 군이 홀로 지낸 지 한 달 즈음되었을 때 막내 고모가 하신 말씀이다. 막내 고모와 고모부는 이대 근처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 규모도 작고, 성도 수도 적지만, 하는 일은 대형교회보다 많은 그런 교회다. 우리는 이 교회의 성도이다.
“홍 서방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여건이 된다면 네가 함께 가서 지내는 건 어떠니?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건강해지지….”
홍 군은 부산에서 지내고 있었다.
부산….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경상도는 무서운 곳이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지역감정이나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모양이다. 사실 홍 군 고향도 통영, 경상도 출신이다. 그런데도 경상도에 대한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피해의식 같기도 하다. 광주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부산의 모습이 살짝 질투 나기도 했다.
“애들이랑 같이 자기한테로 갈까? 그런데 숙소가…. 좀 그렇지?”
“자기가 온다면 좀 더 넓은 곳으로 알아볼게.”
오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선뜻 오라고 대답하는 그가 낯설었다. 웬만해서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인데 숙소를 넓은 곳으로 옮겨서라도 함께 지내자고 하다니. 예전엔 혼자서도 잘 지내더니 지금은 많이 약해진 듯했다.
다시 짐을 쌌다. 홍 군이 렌터카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남편이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 문을 열었다. 숙소 바로 앞에는 벡스코가 있었고, 그 옆에는 미술관이 있었다. 부산에서 가장 핫한 동네라고 했다.
“방이 두 개인 줄 알았는데 하나더라고. 방이랑 거실 사이에 문이 있을 줄 알았지….”
숙소는 침실과 거실 겸 주방이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문은 없는 투룸 같은 원룸이었다.
“우와, 집 정말 좋은데? 엄마 여기 좀 봐. 창문 풍경이 너무 멋있어.”
11층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심의 모습은 반짝였다. 방 크기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저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싫은 내색도, 좋은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숙소를 둘러보았다. 좁은 주방과 한 칸짜리 간이 냉장고, 겨우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2인용 소파와 더블침대.
누울 곳이 있고, 앉을 곳이 있고, 밥을 해 먹을 곳이 있으니 되었다 싶었다.
집이 별건가, 가족이 함께 있는 곳이 집이지.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투룸 같은 원룸에서 살게 된 우리의 모습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남들의 눈엔 우리 가족이 어떻게 비칠까?
남들의 눈까지 신경 쓰기엔 내 삶이 너무나 분주하게 돌아갔다. 나는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대한 판단을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불행의 요소들이 즐비한 경우가 많다. 불행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까?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별 것 아닌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불안장애로 힘든 홍 군,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집이 아닌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는 동안 나는 가족의 무게를 무겁게 느꼈다. 하지만 그 부피가 별 것 아니라고 간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