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 큰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by 선량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테배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들을 만났는데 그중엔 오디세우스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며 아직도 이타케로 돌아가지 못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고향 땅 이타케를 떠나기 전엔 분명 살아계셨던 어머니를 죽음의 지하세계에서 만나게 된 오디세우스는 슬픔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는 나이가 들고 노쇠하여 죽을 운명에 이르게 된 것이란다.”

이 말을 남기고 그녀는 꿈처럼 사라져 갔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운 어머니의 영혼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어머니의 옷자락조차 잡을 수 없었다. 슬피 우는 아들을 향해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인간이 죽으면 당연히 이렇게 되는 거란다. 생명이 하얀 뼈를 떠나게 되면 활활 타오르는 불이 육신을 모두 태워 버리지. 그러면 영혼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된단다. 그러니 너는 빛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떠나거라.”



“그냥 한국에 사는 건 어떻겠냐?”

잠시 친정집에 갔을 때 부모님이 말했다. 10년이나 해외살이를 했으니 이제는 남들처럼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사는 것이 어떻게냐고 하셨다. 처음엔 2~3년만 살다 한국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점점 길어져 10년 차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해외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들 공부는 어떡하려고 그래? 다른 애들은 학교에 학원에….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데 너희 아이들은 맨날 빈 둥 빈 둥 놀고 있으니. 도대체 어떡하려고 그러냐.”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다 보니 한국 아이들에 비해 많이 느린 편이다. 학원은커녕 집에서 조차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특성상 선행학습이 전혀 없고 반복학습만 있기 때문이고, 학교 수업만 잘 듣고 숙제만 잘해도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방학은 여행을 다니며 철저하게 놀고 쉬는 시간으로 간주하니, 방학 때 다음 학년 공부를 미리 끝내야 하는 우리나라의 아이들과는 너무 다르다. 칠십이 넘으신 부모님의 눈에는 우리의 삶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로 보였으리라.


“해외 생활을 그리 오래 했으니, 서울에 집 살 정도는 되냐?”

친정아버지의 말에 헛웃음이 났다. 서울 집 값이 얼마인 줄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실까? 하긴 예전엔 사우디에 가서 몇 년 고생하고 돌아오면 집도 사고, 가게도 차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 아버지 역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힘들었던 가세를 세우셨던 것처럼. 하지만 그때의 집 값과 지금의 집 값은 천지차인 것을 아버지는 몰랐을 것이다.

“아빠, 서울 집 값이 얼마인 줄 아세요? 서울 사는 언니들도 집을 못 사고 있는데…. 요즘은 대출 없이는 집 못 사요. 아니, 전세도 못 구해요.”


이미 결혼한 다 큰 딸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오디세우스의 어머니는 죽어서도 자식 걱정을 하는데…. 집도 없이 방황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할까. 집은 없지만, 빚도 없으니 다행인 거라고 애써 돌려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는 인도와는 다른 나라이며 선진국이라는 말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해외는 그저 낯선 외국일 뿐인 부모님에겐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밀라노에 가지 말고 그냥 한국에 남아야 할 것 같았다. 연세도 많으신 데다가 힘든 농사일로 여기저기가 아파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셔야 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처럼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았다. 밀라노에 가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여전히 한국과 이탈리아를 저울질했다.

어느 날 분당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다. 우리 가족이 밀라노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휴대폰을 나에게 건네며 받아보라고 했다.

“이야, 선량이네 가족이 밀라노로 간다고? 몇 년 전에 작은 아빠가 이탈리아 여행을 했었는데 진짜 멋지고 좋더라. 그런 곳에서 산다니 너무 부럽다. 나도 다시 또 가보고 싶구나. 코로나 끝나면 놀러 갈게.”


아무리 말해도 우리를 걱정하시던 친정 부모님은 주위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과 사위가 능력이 좋다는 칭찬에 불안했던 마음이 사르르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부모님께 죄송했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부모는 사는 내내 자식 걱정만 한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독립을 해도, 자식이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도 부모에게 자식은 여전히 내 아이일 뿐이다. 내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으로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가 기도를 하신다.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안 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 내면엔 여전히 나에 대한 염려가 담겨있다는 걸 안다. 오디세우스의 어머니는 지하세계로 갔지만, 우리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실 것이다. 그곳에서 자식들을 위해 여전히 기도를 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부모가 되어 내 아이들을 위해 평생토록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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