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 번째 공간 : 밀라노에서 첫 숙소

3장. 유럽은 처음이라서

by 선량

습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해가 진지 오래였다. 포근하고 쨍한 날씨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밀라노 날씨를 얼마나 많이 검색해 봤는데, 이렇게 예상을 빗나가다니….

미리 예약해 둔 공항 근처 노보텔로 짐을 들고 들어갔다.

“예약 잘한 거 맞지? 어떤 사람은 한국 시차랑 여기 시차를 잘 못 계산해서 체크인 하자마자 체크 아우슬 해야 했대. 7시간 시차 확인하고 예약한 거 맞지?”

괜히 불안한 마음에 홍 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맞아.”


홍 군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로비 의자에 앉아 있었다. 8시간 시차는 낮과 밤을 바꿔 놓을 만큼 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10월이었는데도 날이 꽤 스산하게 느껴졌다.

우리 룸은 801호였다. 801호라면 당연히 8층이어야 하건만, 엘리베이터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어디로 가는 거지? 카운터에 돌아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저쪽으로 쭈욱 가면 됩니다.”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짐을 끌고 쭈욱 걸었다.


801호는 1층에 있었다. 바로 코 앞에 방을 두고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801호가 아니고 108이라고 써야 되는 거 아닌가? 이탈리아는 아무래도 기존의 상식과는 많이 다른 나라인가 보다….

겨우 108호 같은 801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자다 일어나 보니 아직 새벽이었다. 몸은 여전히 한국 시간에 메여 있었기에 허기가 졌다. 조식 시간에 맞춰 1층 로비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호텔 조식인지. 마음껏 배부르게 먹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던 조식 뷔페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호텔 조식 뷔페는 음식이 양껏 진열되어 있고, 손님들은 알아서 음식을 담아가는 것인데 여기는 뭔가 다르다. 뷔페긴 하지만 음식이 칸막이로 가려져 있었다. 직원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직원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고 있었다. 홍 군이 아들아이와 함께 앞장서서 음식을 말하고 받아갔다. 이젠 내 차례다. 딸아이 손을 잡고 앞으로 가서 어떤 음식이 있나 살폈다. 여자 직원이 접시를 손에 들고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루아상, 바게트, 키위….”

여자 직원은 내가 말할 대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동그렇게 뜨며 손짓을 했다.

“믹스드 프룻츠”

“왓?”

“믹스드 프룻츠, 오버 데어~”

“왓?”

“프룻츠~”

“디스?”

“예스, 앤드 원 아메리카노. 땡큐.”


배불리 먹겠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어서 빨리 주문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째서 영어는 해도 해도 울렁거리는가?

“크게 말을 해야 직원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좀 더 크게 말해주세요.”

옆에 있던 남자 매니저가 나에게 말했다.

“아니, 난 크게 말했는데? 말을 못 알아들은 건 당신 직원이라고! 이거 뭐야,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저 매니저가 나보고 크게 말하래. 저 직원이 못 알아들은 건데. 난 크게 말했거든. 기분 나쁘네.”

“마스크 때문에 잘 안 들리니까 그렇지. 좀 크게 말하지 그랬어.”

홍 군이 내 편을 들지 않고, 타박을 했다. 순간 성질이 확 났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얼마나 당신 편을 들어주었는데….

“우씨, 크게 말했다니까!!”


밀라노에 도착한 첫날 아침부터 대판 싸울 뻔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밀라노였는데 말이다.

과연 우리는 이곳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

밀라노의 첫인상은 그를 닮았다.

첫 인상은 완전히 별로였지만, 조금씩 그에게 스며들어 결국 사랑에 빠진 것처럼. 밀라노와도 사랑에 빠지게 될까? 이상하게 실망보다는 기대가 되었다.

이전 12화11. 밀라노, 오! 밀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