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문제가 생겼대

4.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

by 선량

"잠깐, 산책 좀 할까?"

회사에 다녀온 홍 군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함께 산책을 하자고 하면 나는 덜컥 겁이 난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할 말이 있을 때 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급하게 옷을 걸쳐 입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우리 노동허가서에 문제가 생겼대. 알고 보니.... 그걸 진행하던 에이전시에서 실수를 크게 한 것 같아. 서류부터 다시 다 해야 해...."


이게 뭔 소리람? 이미 서류 제출까지 끝나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서류부터 다시 준비해야 한다니?

"나도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는데.... 다음 주에 한국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알아보니까 90일 체류 기간 넘기면 안 된대."

“헐….”


원래 우리의 계획은 일단 무비자로 밀라노에 들어와 지낸 다음 노동 허가서가 나오면 크리스마스 방학 때 한국에 다시 가서 비자를 받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2개월이면 나온다던 노동 허가서가 계속 나오지 않았고, 밀라노에서 지낸지도 90일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서류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니….

미리 잘 알아보지 않고 현지 에이전시 말만 믿었던 우리의 실수였다. 서류 준비와 비자 신청을 위해 지금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야 했다. 유럽의 무비자 기간인 90일이 넘어가면 우리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기다렸던 것일까?



그날 밤, 홍 군과 함께 온라인으로 서류를 신청했다. 가족관계 증명서, 혼인관계 증명서, 증명서, 증명서….. 우리를 증명해야 할 서류들을 확인하면서 우리를 증명해야 할 게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것이 허탈했다. 한국에서는 별것 아닌 존재였는데 이곳에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증명해야 했다. 나는 불법 체류자가 아니고, 여기서 돈을 벌 것이며, 가족이 있고, 자녀가 있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을 내고 잘 지내다 돌아갈 것을 증명하는 서류들이었다.

애가 탔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도를 떠나 한국에서 지냈던 3개월의 시간과 밀라노에서 할 일 없이 지냈던 80일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한가했던 시간에 미리 알았더라면….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개학을 일주일 남겨두고 있었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스터 샷을 맞지 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식당도 카페도 이용할 수 없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기침을 시작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약국에 가서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사 왔다. 대표로 나와 큰아이를 검사했다.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둘째의 기침이 점점 심해졌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코로나가 나오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말짱 꽝이 되고 만다.


딸아이가 밤새 기침을 했다. 그러다 코피가 터졌다. 휴지로 아이의 코를 틀어 막았다. 하얀 휴지가 빨갛게 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감이 밀려오다 자포자기가 되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의 코를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밀라노로 올 수 있을지 모른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수업일수가 많이 부족한데, 학교는 어떻하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왜 밀라노에 온 것일까?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한국에 있으면 편안할까? 인도를 왜 떠났던가? 차라리 거기에 있을걸. 우리는 왜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렇게 방황을 하며 살까?

그것조차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 새해가 되었고 다시 한번 짐을 쌌다.



이전 14화13.네 번째 공간:이탈리아 남자는 모두 잘생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