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다섯 번째 공간: 원룸 같은 투룸, 홍대 그집

4장.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

by 선량

성격이 급해 미리미리 알아보고 숙소를 구해야 하는 나와 다르게 그는 꽤 신중한 성격이다. 뭘 그리 서두르느냐, 천천히 해도 된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얼마나 한숨을 내쉬었던지. 결국 귀국을 이틀 앞두고 숙소를 알아보는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있긴 하지만 금액이 너무 비싸거나, 세탁기가 없거나, 주말 가격이 세 배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게 빨리 알아보자고 했잖아!!”라고 퍼붓고 싶었지만…..

이너 피스~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


그가 숙소 하나를 찾아서 카톡으로 보냈다. “투룸, 넓은 테라스, 가족 가능, 자가격리 가능, 세탁기, 냉장고, 조리 가능” 연남동에 있는 1층 주택이었다.

“여기 괜찮네. 예약할게!!”

연남동이 핫플레이스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지내면 어떤 기분일까? 자가격리하느라 밖에 나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 좋을 것 같았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곤했지만 견딜 만했다. 미리 작성해둔 서류뭉치를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무슨 말을 해도 잘 통하는 이 기분, 너무 좋았다.


“줄을 이쪽에 스셔야죠. 이거 쓰고 가셔야죠. 저기요? 이쪽이라고요. 사람 진짜 많네….”

인상을 쓰며 일하는 사람들, 뭔가 지쳐 보이는 모습들, 아침이었지만 저녁 같은 풍경들. 좋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짜증이 밀려왔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입국 서류는 왜 이리 많이 쓰는 거야. 똑같은 걸 왜 계속하라는 거야~~”

어느새 나도 똑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방역 택시를 타고 마포구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시 방역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두었던 연남동의 숙소로 향했다.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는 가게를 지나 주택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왼쪽 끝에 주소지의 주택이 보였다.

짐을 바리바리 끌고 주택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약한 102호는…. 1층이라고 하기엔 조금 낮고, 지하라고 하기엔 조금 높은 곳이었다. 입구 앞마당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고, 테이블 세 개와 의자가 있었다. 분명히 넓은 테라스라고 했는데….

문을 열고 102호로 들어갔다. 사이트에서 봤던 소파와 주방, 침실과 세컨드 방을 둘러보았다. 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이트에서 말한 투룸, 주방, 소파가 있는 거실, 침대 두 개가 모두 있었지만, 원룸 같은 투룸을 어떡하지? 부산에서의 투룸 같은 원룸이 떠올랐다. 여기도 저기도 분명 원룸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떠돌던 집도 생각났다. 분명히 집이 복층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눕기엔 너무나 아슬아슬했던 캣 타워 같은 복층 원룸. 집 없는 설움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이거 사기 아니야?”

너무나도 어이없는 숙소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화가 나는 대신 웃음이 났다. 홍 군과 둘이 마주 보며 실 없이 웃었다.


먹고 자는 건 문제가 아닌데, 좁은 숙소에 웅크리고 있자니 속이 영 답답해서 못쓰겠다. 다행히도 테라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좁긴 하지만 있는 게 어딘가? 바깥공기를 좀 마셔볼까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아~악 추워!!”

1월 초의 서울은 너무나도 추웠다. 집안으로 들어와 뜨끈한 바닥에 드러누워 귤을 까먹었다.


매번 밥과 김치만 먹고살 수는 없는 법.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배달을 시켜 먹는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떡볶이와 순대, 치킨,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숙소에만 머물러도 돈이 술술 나갔다.


문득, 우리가 집 없이 산지 거의 6개월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 없는 삶이 왜 이리 괜찮은 걸까?

좀 불편하긴 하지만, 나름 지낼만했다. 여행자는 아니지만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랄가. 내 집이 아니기에 어떤 모양의 숙소에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마음이랄까.

사람의 인생이 꼭 우리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잠시 소풍온 기분으로 산다면 어느 물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집도, 돈도 약간의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는 물성이 아닐까.

그것을 아무리 많이 소유한들,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편리하다는 것이 편안한 것은 아니듯, 많이 가졌다고 하여 행복한 것도 아닐 것이다.


메뚜기 같은 삶이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러다 집이 생기면 어색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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