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여섯 번째 공간:끊임없이 유혹하는 세이렌

by 선량
“이제 그대는 제일 먼저 세이렌 자매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간을 유혹하지요.
무심코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사람은 아내와 자식들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비자 문제로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 안에 세이렌이 있었다. 그 세이렌은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포기해, 네가 있어야 할 곳은 거기가 아니고 여기야. 무엇을 위해 밀라노로 가려하는 거야? 그냥 한국에서 살아. 남들처럼 살아. 대출을 받아서 집을 구하고,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

마음속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무척 괴로웠다. 한순간의 실수로 이탈리아 비자도 받지 못하고 숙소와 친척 집을 전전긍긍하는 우리가 마치 오디세우스 같았다.


홍 군의 워킹퍼밋을 위해 서류를 준비해서 이탈리아로 보냈다. 모든 행정이 우편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인도조차도 온라인으로 비자를 신청하는데 이탈리아는 아니었다. 모든 업무를 우체국에서 봤으며 종이 서류를 준비해야 했고, 서류로 신청해야 했다. 그나마 지금은 번호표도 나오고 접수하는 속도도 빨라졌다고 한다. 그 전엔 도대체 어떻게 업무를 봤을까?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일 것 같았던 이탈리아는 전혀 선진국이 아니었다. 한국에 비하면 많이 느렸고, 복잡했고, 까다로웠다.

홍 군의 워킹퍼밋이 나오면 바로 대사관으로 달려가 비자를 신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사관에 방문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이 또한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으니, 워킹 퍼밋이 나온 후에 예약을 하면 겨우 한 달 뒤에나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략적인 날짜를 계산해서 미리 방문 예약을 걸어두었다. 그때까지 워킹 퍼밋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의 밀라노 행은 더 늦어질 것이었다.


남편은 다시 본사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도 남편을 따라 내려가기엔 조금 위험해 보였다. 이번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탈리아 대사관에 가려면 다시 서울로 와야 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일이 힘겹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다시 언니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아무리 자매 사이가 좋다고 해도 내 집이 아닌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힘겹기만 하다. 그건 언니네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형부에게도 미안하고, 학교와 학원에 다녀야 하는 두 조카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밀라노로 언제 가니?”라고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언제 갈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기약도 없는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낼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공부도 안 하고 노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점점 지쳐갔다. “그냥 한국에 살까?” 이 말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포기가 되지 않았다. 밀라노에 대해 전혀 몰랐다면 오히려 더 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달콤한 밀라노를 한번 맛보고 나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포기하고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라는 세이렌의 목소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기다려 보겠다는 내 자아의 목소리가 날마다 싸웠다.


어떤 날엔 세이렌이 승리했다. 그럼 나는 엉엉 울었다.

또 어떤 날에는 내 자아가 이겼다. 그런 날엔 한 껏 힘을 내어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대는 재빨리 그들의 곁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꿀처럼 달콤한 밀랍을 잘 이겨서 동료들의 귀를 막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세요.”
a05.jpg



키르케는 아이아이 섬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 자매를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달콤한 노랫소리에 홀려 세이렌 자매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결국 물에 빠져 뼈가 되어 남았다.

내 안의 세이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마음의 귀를 막아 줄 밀랍이 필요했다.


그 밀람은 바로 자기 확신이었다. 결국 가게 될 거라는 확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고 바로 이탈리아라는 확신이었다.


이전 16화15. 다섯 번째 공간: 원룸 같은 투룸, 홍대 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