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일곱 번째 공간 : 도망치는 것이 최선일 때

by 선량

키르케는 이타케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에게 넓은 바다에서 만나게 될 위험과 피할 방도를 알려주었다. 그 첫 번째 위험이 세이렌 자매였고, 밀랍과 밧줄을 이용해 세이렌의 목소리를 이겨낼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다음엔 두 갈래 바닷길이 나오는데 바로 열두 개의 발과 여섯 개의 목에 이빨이 세 줄이나 되는 무서운 괴물 스킬라가 있는 방향과 하루에 세 번 검은 물을 내뱉고 다시 빨아들이는 카립디스가 있는 방향이다. 카립디스가 바닷물을 빨아들이면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으며 신조차도 구해줄 수 없다며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카립디스 쪽 보다는 스킬라 쪽으로 항해하라고 권고했다. 동료를 전부 잃는 것보다 여섯 명만 잃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키르케의 말을 들은 오디세우스가 “두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키르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대담한 자여, 그대는 불사신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자정인가요? 그들은 대적할 수 없는 불사의 재앙입니다. 그들을 막을 방법은 없어요.
무장을 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더 많은 동료들을 잃을 뿐입니다.
그냥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에요.”


그냥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는 키르케의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건 비겁한 것도 아니고, 나약한 것도 아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다운로드 (3).jfif 스킬라와 카립디스

셋째 언니 집과 동생 집에서 지내다 둘째 언니 집으로 들어갔다. 둘째 언니 집은 두 아이를 데리고 지내기엔 좀 좁았지만, 조카들이 많이 커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언니와 형부는 출근하고, 두 조카들이 학교에 가면, 낮시간 동안 우리들끼리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 집으로 들어간 지 삼일 째 되던 날, 형부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열도 조금 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심 코로나가 의심스러웠지만, 설마….

다음날 형부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메시지가 왔다. 비상이 걸렸다. 어젯밤 내 두 아이들이 이모부와 딱 붙어서 핸드폰을 봤었는데…. 함께 저녁도 먹었는데….

홍 군의 워킹 퍼밋이 나오면 바로 비자 신청을 하고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기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면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시골로 갈 수도 없고, 다시 동생네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언니 집에 계속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가로수 길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가족끼리 지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키르케의 말처럼 피할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더 큰 환란이 닥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럴 때는 빨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바로 짐을 챙겼다. 이리저리 떠돌며 들고 다닌 짐이 조금씩 많아져 있었다. 그 와중에 언니는 치킨을 시켰다. 오늘 저녁은 치킨을 먹기로 아이들과 약속했었기 때문이었다.

형부를 안방에 격리시키고 나와 언니, 두 조카들과 내 두 아이들끼리 치킨을 먹었다. 카카오 택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짐을 들고 아파트 현관으로 내려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스크를 타고 들어왔다. 택시에 짐을 가득 싣고 강남 한복판으로 도망쳤다.




“선량아, 언니도 코로나 걸렸대. 애들도 다 양성 나왔어. 너희는 괜찮니? 같이 치킨도 먹었는데…. 너네 코로나 걸리면 어쩌니?”

이틀 후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부와 언니, 아이들까지 모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와 아이들은 아무 증상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가진단키트로 콧구멍을 여러 번 쑤셨지만, 두줄은 나오지 않았다. 나와 아이들은 무사했다.


새로운 숙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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