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가로수 길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연남동으로 이사를 했다. 곧 나온다던 워킹 퍼밋은 몇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이탈리아의 행정이 느리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더 심하게 느렸다. 워킹 퍼밋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진짜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하염없이 소식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애가 탔다. 그래도 곧 나온다고 하니, 정확한 날짜도 모른 채 한남동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에 미리 비자 신청 방문 예약을 해놓았다.
이탈리아 대사관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미리 인터넷으로 방문 예약을 해야 하는데,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로 막혀있던 이탈리아 입국이 올해 들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말인즉은, 대사관 방문 예약자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2월 말에 신청했건만, 예약이 가능한 가장 빠른 날이 3월 23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워킹 퍼밋이 3월 22일 밤에 나왔다. 그런데 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원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이탈리아에서 우편으로 보내면 그걸 들고 대사관에 가야 하는 실정이었다.
바로 다음 날이 대사관 방문 예약 날이었다. 우편으로 받으려면 며칠이 더 걸릴 것이고, 다시 방문 예약을 하려면 4월이 훌쩍 넘어갈 터였다. 아이들은 1월부터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온라인 수업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더 늦어진다면 아이들이 유급당하거나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출력한 워킹 퍼밋 사본을 들고 대사관에 방문하기로 했다. 일단 들이 대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워킹 퍼밋 사본과 비자 신청 서류 뭉치를 잔뜩 들고 이탈리아 대사관에 간 홍 군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 시각 나는 연남동 숙소 소파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우리의 사정을 잘 봐줄 수 있는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제발 이제는 비자가 나오게 해 달라고, 이제는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드디어 차례가 된 홍 군이 준비해온 서류를 담당자에게 넘겼다. 한참을 분주하게 오가던 담당자가 홍 군을 부르며 한마디 했다.
“홍 00님, 이러시면 곤란하죠, 신청서를 잘 못 작성하셨잖아요!”
“네?”
그 순간 홍 군의 다리가 탁, 풀려버렸다.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 모아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비자 타입이 잘 못 되었어요. 한참 찾았네요. 일부러 다른 타입으로 신청하신 거 아니죠?”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비자 대행 회사에서 하라는 데로 했는데요….”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눈만 끔뻑거렸다고 한다.
이탈리아 장기비자 타입에는 몇 가지가 있다. 유학비자, 종속노동비자, 자율 노동비자, 미션(공무) 비자, 종교부지, 거주비자, 입양 목적 비자이다. 홍 군은 한국 회사에 입사하여 이탈리아 법인에서 일을 하는 경우이기 대문에 당연히 종속노동비자 타입을 작성하고 신청한 상태였다. 그런데 중간에 업무 환경이 바뀐 것이었다. 홍 군을 불렀던 법인장님께서 지난 12월 말에 퇴사를 하고 이탈리아를 떠나버리신 것이다. 홍 군은 졸지에 이탈리아 법인장이 되고 말았다. 법인장의 경우엔 비자 타입이 다르다는 걸 전혀 몰랐다. 이 경우엔 ‘자율 노동비자’를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 신청서 있으니 다시 작성해주세요.”
홍 군은 대사관 담당자의 말에 다시 한번 신청서를 쓰고 제출했다.
“지금 신청하면… 4월 중순에나 나올 것 같은데요?”
4월 중순이라니….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간지 이미 세 달이 넘었는데 더 빠져야 한다니…. 홍 군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조금만 더 빨리 안될까요? 제가 법인장인데, 한국에 이러고 있어서 회사가 좀 어렵습니다…..”
“음…. 잠시만요.”
사실 한국 직원은 비자 신청 접수만 하고 비자를 발급해 주는 사람은 이탈리아 영사님일 것이다. 담당자가 영사과 안으로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2주 더 기다리시면 나올 거예요.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세요?”
홍 군은 그때 아이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저…. 사실은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고 있어요.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를 가야 학교를 가는데…. 이러다 유급당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됩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홍 군의 마지막 말을 들은 담당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 번만 더 부탁해볼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그 담당자는 다시 한번 영사과에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나왔다.
“일단 다음 주에 티켓팅 하신 거죠? 그거 추소하지 마시고요.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오세요.”
“네? 그럼 다음 주에 나오는 건가요?”
“네. 그럴 것 같네요. 이탈리아 가셔서 한국 회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홍 군의 비자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우리는 밀라노행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