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밀라노는 봄이었다. 해가 뜨면 따듯하고 해가 지면 추운 그런 날씨였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방역이 많이 풀려 있었다. 다들 마스크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처음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게 어색했지만, 금세 그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밀라노의 새 숙소는 꽤 좋았다. 침실 하나에 거실 하나가 전부였고, 세탁기는 1층 공동 세탁실에 딱 하나 있었고, 주방이 너무 좁아서 밥을 할 때마다 힘들었지만, 학교와 가깝고 햇볕이 잘 들어서 좋았다. 집을 구할 때까지는 이 숙소에서 계속 지낼 계획이었다.
좁은 주방에서 하루 세 번 밥을 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집이 아니니 냄비도, 그릇도 부족했다. 잘 차려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을 굶기진 말아야 했다. 그래서 자주 먹은 게 컵라면이었다.
그날도 애매한 시간에 배가 고프다는 딸아이에게 컵라면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딸아이는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앞에 두고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가다가 노트북 케이블에 발이 걸렸다. 노트북이 움직이면서 컵라면을 밀었고, 컵라면이 그대로 딸아이 가슴으로 쏟아졌다. 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그 라면 물은 2분 전에 펄펄 끓었던 물이었다.
바로 아이의 옷을 벗기고 욕실로 데려갔다. 샤워기를 들고 차가운 물을 틀어 아이의 가슴에 뿌렸다. 아이의 가슴에서 물집이 하얗게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차갑고 아프다고 울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이 났다.
“지안아, 아빠한테 전화해.”
딸아이는 차가운 물에 흠뻑 젖어 벌벌 떨었다. 가슴은 점점 벌겋게 변해가고 있었다. 바로 응급실에 가야 했다. 조금 후에 매니저가 올라왔다. 그리고 숙소 맞은편에 있는 병원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갔다. 옷을 입히지 못해 수건으로 대충 가린 채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병원은 노인 요양병원이어서 아이들은 봐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린이 전문 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홍 군이 차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다시 어린이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오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해외에서 다치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진료비가 꽤 비싸다고 하던데…. 화상이 너무 심하면 어쩌나…. 나 때문에 아이가 너무 힘들면 어쩌나….
아이는 너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이를 안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인도만 떠나면 좋을 줄 알았는데, 한국만 떠나면 좋을 줄 알았는데, 밀라노만 오면 좋을 줄 알았는데, 매번 어려움이 다시 생겼다.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가 바로 이런 것일까?
숨통이 트이는가 싶으면 다시 조여지고, 좀 편해지나 싶으면 다시 어려워진다. 무엇보다도 딸아이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 없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린이 전문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갔다. 아이를 침대에 눕힌 후 산소 포화도를 확인하고, 피검사를 하고, 코로나 검사를 하고, 포도당을 맞추었다. 보호자는 한 명만 가능하다고 하여 홍 군과 아들아이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수술을 마치고 온 외과 선생님이 이것저것 확인을 해보더니, 몸 전체의 4%에 해당하는 2도 화상이라고 했다. 5%가 넘어가면 입원해야 하는데 다행이었다. 가슴 드레싱을 하고, 바셀린 거즈를 붙이고 붕대를 감은 후 퇴원을 했다.
걱정하고 있던 병원비를 물어보았다.
“병원비는 무료예요.”
“네? 무료라고요?”
“네. 조심히 가세요.”
알고 보니 14세 이하 어린이는 병원비가 무료이며 응급실을 이용하는 모든 환자도 무료라고 한다. 정말 감사하게 치료를 받고 우리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 후 한 달 동안 외래진료를 다녔다. 드레싱을 할 때마다 아이는 아프다고 울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두 번째 진료를 볼 때 아이의 상처를 보니, 유두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상으로 아이의 유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때문에 아이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 난 찌찌가 없어도 괜찮아…”
아이의 말을 들으니 더 눈물이 났다.
“소은아, 찌찌는 다시 자랄 거야. 걱정하지 마.”
옆에 있던 홍 군이 말했다.
뭐라고? 찌찌가 다시 자란다고? 나는 홍 군의 말을 듣고 울다가 웃고 말았다. 나중에 다시 보니 유두 바로 앞까지 화상을 입었고, 유두는 무사히 붙어 있었다.
3달이 지난 지금, 아이의 왼쪽 가슴엔 커다란 화상 흉터가 남아있다. 절대 컵라면을 먹지 않겠다던 딸아이는 어느새 다 잊고 컵라면을 다시 먹는다. 홍 군은 밤마다 아이의 가슴에 흉터연고를 정성스레 발라준다. 아이가 아프고 나니 알 것 같다.
별것 아닌 이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순간인지를.